남도여행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창밖으로 해돋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곽종훈 형이 카톡방에 성경 구절을 올렸다. 'Early Bird'로구나~!
사흘 동안 버스 옆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초등학교 중학교 선배이니만큼 "학교 다닐 때부터 따라다녔더라면 나도 좋은 성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앙심이 두터우신 분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아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옛날 옛적에 원효 스님이라는 잘 생긴 중이 살았대요"라는 스토리가 머리에 떠올랐다.
어제 향일암에 올라가서 보았거니와 변변한 길도 없었을 때 원효 스님은 괴이쩍은 큰 바위 틈을 비집고 올라가 너른 암반 위에 결과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을 시작하였다. 득도하기 전에는 하산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를 때 화두(話頭)가 절로 깨우쳐졌다.
오늘 아침 나는 성경 잠언의 위 구절을 읽고 그동안 내가 계획하고 추진했던 일에 별 진전이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의 법률문화를 이야기처럼 풀어서 인터넷에 올린다고? 하나님께 나의 계획을 아뢰지 않고 오직 내 머리에만 의존해서 일을 도모하려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 사람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징징대었던 것이다.
순천만 습지에서 실감한 공공의 역할
셋째 날의 주제인 '공공(公共)의 역할'은 순천만 습지를 찾았을 때 우리 모두 마음에 품었던 화두였다.
우리가 탐방할 순천만 습지는 대부분 공유수면(公有水面)과 습지(濕地, wetland)였겠지만 순천만 습지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민간 사유지도 상당 부분 포함시키고 사적인 이용ㆍ수익을 제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한 근거법령은 나중에 찾아보겠지만 우리나라가 1997년에 가입한 람사르 협약(정식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The Convention on Wetlands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에 따라 정부는 협약에 등재된 습지를 보호하고 보전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점은 순천이 자랑하는 국가정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정원은 경내의 정원을 기화요초로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의 경관에 들어가는 원근 각지 건물의 높이나 외관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일부 사유재산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순천 시민 뿐만 아니라 전국민,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만듦으로써 전체 순천시민들의 이익과 부(富)를 증진시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순천만을 찾아오는 흑두루미 같은 철새는 물론 습지에 사는 짬뚱어, 새우 같은 생물이 많이 서식할 때 철새들도 많이 찾아오고 이곳의 생태계는 아주 건강하게 유지될 것임에 틀림 없다.
가이드는 시간제약이 있으므로 맞은편 용산 전망대까지는 갈 수 없고 보드워크가 끝나는 출렁다리까지 가서 보고 오면 된다고 말했다. 갈대를 그대로 두지 않고 베어내야 하는데 워낙 넓다 보니까 헬리콥터를 이용해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일부 마른 갈대가 서 있는 옆으로 새로 자라는 푸른 갈대숲이 어울려 마치 청보리밭을 보는 듯했다.
순천만 습지는 너른 뻘밭에 갈대숲을 조성하고 습지 앞 출렁다리, 용산 오솔길까지 여러 갈래의 보드워크를 깔아놓았다. 그래서 방문객들이 쉽게 걸어다니고 지근거리에서 습생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였다.
그런데 인근 주민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을 말해주는 듯했다. 용산 전망대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급한 나머지 그곳에서 용변을 보는 바람에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그곳에 화장실을 설치해달라는 요구사항이었다. 순천만 공원 측에서는 산 위에 화장실을 만들기도 관리하기도 힘드니 소극적으로 전망대까지 오르는 통행로를 폐쇄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았다. 이참에 삼성전자가 빌 게이츠와 손을 잡고 보급하는 물이 필요없는 화장실을 이곳에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정원에서의 공공선(公共善)의 증진
순천만 습지나 국가정원에서 65세 이상은 신분증만 제시하면 입장이 무료였다.
우리 일행은 입구의 장미정원 앞 파라솔 있는 벤치에 앉아 김시영 변호사가 찍어주는 독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누군가 "영정사진 찍는 것 같다"고 말해 모두 웃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장면의 사진을 본다면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한 장미화원에서 노닐던 "그때가 좋았지"(Those were good days!)하는 상념이 들 터였다.
아닌게 아니라 유치원 원아들이 선생님을 따라 와서, 또 가족 단위로 놀러와서 소풍을 즐기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우리는 봉화산 비탈길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호수를 배타고 가는 사람들, 애니메이션 관람차를 타고 경내를 한 바퀴 도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유리 온실로 갔다.
키가 큰 바나나 같은 열대 식물과 선인장 등 다육식물, 여러 종류의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인공 폭포도 있어서 물소리가 시원한 가운데 2층의 통로로 올라가 높은 자리에서 각종 식물 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실내 관상수로 사랑받는 벤자민 나무가 3층 높이로 자라 있어 아주 볼 만했다.
에필로그
점심 시간이 되어 우리는 순천 갯장어집으로 가서 마지막 오찬을 즐겼다.
우리 모두 졸업 50주년 행사를 이처럼 유익하고 보람있게 진행하여준 김종인 회장과 윤재윤 전임회장, 그리고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메고 다니며 동기들의 사진을 정성껏 찍어준 김시영 변호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윤재윤 전임회장은 우리가 고마움을 표할 사람은 1, 2호차의 가이드와 두 분 운전기사도 있다며 금일봉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순서까지 잘 마치고 우리가 서울행 버스에 탈 때 전주에서 활동하는 임종섭 변호사가 자기는 따로 전주로 간다면서 동기들에게 하직인사를 고했다.
셋째 날 공공성(公共性)이라는 컨셉에 맞는 이벤트가 한 번 더 있었다.
둘째 날 아침 출발을 서두른 탓에 2호차에서 5분 정도 지각한 동기가 한 사람 있었다. 그래서 자기를 기다려준 2호차 및 1호차의 승객들에게 여수 해상케이블카를 기다리는 동안 딸기찹쌀떡을 사서 돌렸다.
1호차에서도 그에 대한 답례든 아니면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내놓으라는 압력이 은근히 가해졌다.
이때 곽종훈 변호사가 전주 한옥마을에서 이오당에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동기회에서 호텔 측 환대에 감사한다며 금일봉을 증정하고 온 것은 예상 밖 지출이라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오당 방문을 제안한 사람으로서 동기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쏘겠다고 했다. 아무튼 우리는 1970년에 처음 출시된 브라보콘이 우리의 같은 세대에 속한다며 익산 미륵사지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순조로웠다. 조치원부터는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어서 다른 차선은 차량증가로 정체가 심했지만 우리가 탄 버스는 예상보다 일찍 서울에 도착했다.
나 역시 그저 가이드와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편하게 먹고 자고 하였지만 여행을 마치고다니 감흥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을 가다듬어 3연으로 된 17음절의 짧은 시(短詩)를 우리말과 영어로 지어보았다.
좋은 경치 식도락에 만족스러운 수학여행
졸업 날이 엊그제 같은데 모두가 백발일세
60주년 행사 때도 건강하게 볼 수 있기를!
Good scenery and nice meals were satisfactory during the trip.
We're supposed to be still young, but everybody has gray hair.
I hope to see you all in good shape again after ten years from now.
⇒ 앙코르 수학여행 첫째 날 이야기
⇒ 앙코르 수학여행 둘째 날 이야기
⇒ 김시영 YouTube 채널 TuniDobi의 앙코르 수학여행 동영상 화보 제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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