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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5] 시라쿠사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

Onepark 2025. 10. 27. 09:00

오늘은 시칠리아에서 5일째 되는 날, 저녁에는 카페리를 타고 몰타로 이동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30분 일찍 숙소를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지하 2층 승용차 주차장 입구에 캐리어를 옮겨놓고 버스를 기다렸다.

숙소가 舊시가지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버스를 타고 시라쿠사 쪽으로 진행하다가 전망이 좋은 뷰포인트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 폭우가 내렸던가 싶을 정도로 일요일 아침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1693년 시칠리아 남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계곡에 위치한 라구사는 인명피해가 특히 많았다.

그 후 상부 지역에 신도시(Ragusa Superiore)가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되었고 구도시(Ragusa Inferiore)에서도 재건이 이루어졌다. 신도시와 구도시는 분리되어 있다가 1928년 통합이 되어 라구사 주도(州都)가 되었다.

이곳은 1848년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프랑스 부르봉 정부에 반기를 들고 맨 처음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가리발디 장군의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고 한다.

 

 

가이드는 오늘이 시칠리아 여행 안내 마지막 날이므로 한 곳이라도 더 보여드리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라며 해마다 봄철이면 화려한 꽃의 축제가 열리는 노토(Noto)로 간다고 말했다.

이곳에도 두오모 성당이 있고 볼 만하지만 예정에 없던 곳이므로 내부에 들어가진 않고 상점이 많은 메인 스트리트에서 기념품이나 간식 거리를 사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 노토 시의 메인스트리트 게이트
* 레몬 착즙기 판매상

 

* 꽃의 축제 기간 중에는 이 길이 온갖 꽃들로 장식된다고 한다.
* 제1차 세계대전 노토 지역의 전몰자 위령비

 

우리 내외도 시칠리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말에 납작 아몬드 등 이곳 토산품과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모양이 예쁜 레몬 착즙기를 골랐다. 9유로이면 사겠다고 말하자 착즙기를 어떻게 쓰는지 시연을 하던 젊은 상인이 할인은 안 되고 10유로에 레몬을 한 개 덤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일요일이라서 주차장 앞 광장에는 남녀 보이스카웃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앉아 오늘 행사일정을 논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를 탄 지 한 시간이 못되어 우리는 시라쿠사(Siracusa)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Neapolis Archeological Park)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인 화가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이곳의 아름다운 석재와 경관을 보고 '천국의 채석장(Latomie del Paradiso)'이라며 경탄한 곳이라고 했다. 채석장과 그리스 극장, 로마 극장을 차례로 보고 나서 공원 내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 네아폴리스 그리스 극장의 모형도
* 카라바지오가 이 곳을 방문하고 '천국의 채석장'이라고 불렀다.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처럼 볼 게 많은지 입구에서는 개인과 단체 입장객들이 줄을 지어 들어갔다. 우리는 시칠리아 도착 첫 날 타오르미나에서 그리스 원형극장을 보았던 터라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곳 공원은 이미 신전과 성당, 건물을 짓기 위해 엄청난 석재를 캐어냈던 만큼 그 빈 자리에는 현대식 청동 조각상을 전시해 놓았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니 이 지역을 다스리던 참주 디오니소스가 정적과 반대파를 가두었던 동굴이 나타났다. 높이가 20-30m나 되는 상부가 뾰족한 동굴이었으므로 '디오니소스의 귀'라고 불렸는데 가혹한 환경 속에서 죄수들을 얼마나 엄하게 다루었을지 짐작이 갔다.

 

* 참주 '디오니소스의 귀'라고 불렸던 동굴 감옥
* 천사의 날개는 여자 쪽일까 아니면 억센 손 쪽일까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조형물

 

바위 언덕 위에는 묘지 터가 있었고 시라쿠사에서 살았던 아르키메데스의 무덤도 이 근방 어디엔가 있다고 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원주율, 금관의 비중, 지레와 도르레, 반사경을 이용한 적 함선 파괴 등 수많은 발견 발명을 하였다. 그러나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시라쿠사를 함락시킨 로마 병사에 의해 살해 당했다.

 

더 위로 올라가니 눈 앞에는 상상했던 이상의 광경이 펼쳐졌다. 첫날 보았던 타오르미나 극장보다 훨씬 오래 전에 만들어졌고 규모도 더 큰 원형극장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사진 객석이 모두 천연 바위를 깎아서 만든 것이라 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정확한 측정과 계산 하에 석공들이 단단한 바위돌을 자르고 정으로 다듬어 극장의 모든 시설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첫날부터 가졌던 의문 'For Whom, By Whom, For What Purpose'가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 우리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여기 같이 올려놓기로 했다.

 

이러한 상념을 돌려놓기라도 하듯 가이드 김경철 씨가 저 아래 무대가 아닌 객석 상단부에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이태리 가곡을 불렀다. 엊그제 마시모 극장에서는 나이탓인지 목소리에 변성이 와서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며 정식으로 성악가의 포즈를 취하고 "오 솔레 미오"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 있던 다른 관광객들도 예정에도 없이 열리는 미니 리사이틀을 경청하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 예상치 못한 미니 리사이틀에 박수 치는 관객들
* 그리스 극장의 무대에서 바라본 관람석
* 그리스 극장에서 열렸던 과거 공연의 한 장면. 출처: 구내 레스토랑에 게시된 사진

 

그 다음 방문지 로마 극장에서는 검투사 경기가 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리스 극장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았다. 그런데 바위 위에 만든 객석은 일부 있어도 나머지 인공구조물로 만든 객석은 대부분 멸실되었고 흔적만 남아 있었다. 대신 현대 조각가가 제작한 여러 가지 조형물을 전시해 놓아 심심치는 않아 보였다.

 

* 관람석의 일부만 남아 있는 로마 원형극장. 가운데 청동상은 20세기 조형물임
* 로마 원형극장 주변의 공동묘지 석관

 

우리는 바로크 시대의 화가 카라바지오가 이곳에 와서 무슨 생각을 하고 그림을 그렸을까 생각하며 채석장이 바라다보이는 공원 구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내놓은 식전 빵이 샤프란과 오징어 먹물을 넣었는지 노랗고 검은 색인 데다 맛도 있었다. 메인은 감자와 돼지고기를 저민 요리가 나왔고, 디저트로는 그리 달지 않은 리코타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비가 조금씩 뿌르는 가운데 사라쿠사로 이동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돌아볼 곳은 오르티기아(Ortygia) 섬에 모두 몰려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폴론 신전 터와 다이아나 분수를 구경한 후 두오모 성당(공사 중)과 루치아 성녀 교회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각종 해산물 튀김 요리로 유명한 먹자골목에서 시식을 하기도 했다. 원하는 사람은 파피루스가 심겨져 있는 아레투사 샘(Fonte Aretusa)을 보고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해변까지 걸어갔다.

 

* 시라쿠사 항에 정박 중인 대형 크루즈선
* 시라쿠사의 오르티기아 섬으로 건너가는 다리 난간에도 어김없이 달려 있는 사랑의 자물쇠
* 아폴로 신전 유적지
* 다이아나 여신의 분수
* 영화 <말레나>에서 담뱃불 붙이는 장면을 촬영했던 두오모 광장
* 카라바지오가 그린 '루치아 성녀의 매장(순교)' 제단화가 전시되어 있는 산타 루치아 성당
* 남편의 전사통지를 받은 말레나가 카페에 앉아 담배를 꺼내자 뭇남성이 불을 붙여준다.

 

영화 말레나〉(2000)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은 모니카 벨루치가 담배를 피워무는 문제의 장면이 촬영되었던 광장으로 갔다.

2차대전 당시 남편이 전사한 말레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불을 붙여주러 다투던 남자들 대신 가벼운 차림으로 오가는 관광객들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카라바지오가 그린 루치아 성녀의 순교 장면 복제화가 전시되어 있는 교회 건너편 카페에 앉아 절세의 미녀 루치아와 말레나가 각기 처했던 상황을 비교해 보았다. 한두 차례 비가 뿌리고 지나갔다.

 

* 아레투사 샘의 파피루스
* 오르티기아 섬 해변의 한쪽에는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비치가 있다.

 

저녁 6시에 말타로 출항하는 비르투 페리(Virtu Ferries)를 타기 위해 우리는 포짤로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 김경철 가이드는 같이 여행을 하여 즐거웠다면서 자기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관광안내를 하겠다고 말하고 로마에 오시면 언제든지 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일행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 시라쿠사에서 포짤로로 가는 도중 비가 내렸다.

 

몰타(Malta)로 가는 것도 엄연히 국경을 넘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개찰구에서 여권과 승선 티켓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나서 캐리어는 공항의 화물운반차 같은 소형 컨테이너에 실은 후  유로클래스 선실로 올라갔다. 다행인 것은 출항한지 얼마 안 되어 수평선 위로 지는 해를 구경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윽고 검은 구름 아래도 환한 저녁놀이 비치면서 마치 독일 국기를 보는 것 같은 경치가 펼쳐졌다.

 

 

우리가 탄 페리선은 정확히 7시 45분 몰타의 발레타(Valletta) 항에 도착했다. 몰타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운전대가 오른편에 있는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세인트 줄리안(Saint Julian)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이틀은 5성급 인터콘티넨털(InterContinental Malta)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객실과 화장실도 널찍하고 TV에선 익숙한 영어 방송이 나와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 세인트 줄리안의 인터콘 호텔에 접근할 때 눈길을 끌었던 가분수 모양의 머큐리 타워
* 입체적 구조의 호텔 로비를 장식한 디지털 벽화
* 일류 호텔답지 않게 일률적으로 구워서 내온 비프스테이크

 

저녁식사는 9시에 호텔 구내에서 몇 가지 메뉴 중에서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뜨끈한 당근 수프는 좋았지만 익힘 정도를 묻지 않고 내놓은 스테이크나 과일 통조림 같은 후루츠 샐러드는 우리를 실망케 했다.

더욱이 우리 부부가 배정받은 객실은 8층의 맨 끝 방이어서 엘리베이터 홀에서 미로와 같은 복도를 한참 걸어야 했다. 그래도 이틀 연박으로 내일 아침 짐을 싸지 않아도 되기에 좋았다.

 

 

⇒ 몰타 1: 고조섬 타피누 성당, 빅토리아 시타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