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Malta)에서의 첫 날이다. 관광상품에 따라서는 몰타에서 시작해 시칠리아를 한 바퀴 돌고 귀국하는 일정도 있으므로 우리 코스와 비교해 보았다. 여정을 카타니아 In 발레타 Out으로 하는 편이 아무래도 몰타의 호텔 등급이나 도시 인프라가 낫기 때문에 여행 후반전을 비교적 편하게 마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2연박(連泊)이어서 둘째 날 아침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아침식사 장소는 어제 저녁의 식사 장소와 달랐다. 단체관광객들로 붐비지 않고 커피도 주문을 받아 서빙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오믈렛 등 계란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영어로 듣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몰타는 우리에겐 흰털의 소형견 말티즈(Maltese)가 유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사도행전(28장)의 기사로 더 유명하다. 사도 바울이 죄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조난 당했다가 이 섬에 닿아 구사일생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몰타에서는 지금도 사도 바울이 표착했던 2월 10일을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몰타는 시칠리아와 마찬가지로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한 탓에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제국, 아랍 왕국, 노르만 왕국,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십자군 전쟁 때 튀르키에 연안의 로도스 섬을 기반으로 의료 구호 활동을 벌이던 성 요한 기사단(Order of the Knights of St. John)이 1522년 오스만 제국 군대에 로도스 섬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유랑하다가 1530년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Charles V of Spain)로부터 몰타 섬을 이양받았다. 신성로마 황제(스페인 국왕)에게 1년에 매(falcon) 한 마리씩 조공을 바치는 매우 후한 조건이었다.
그때로부터 성 요한 기사단은 이곳에 새로 본거지를 마련하고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이들은 지중해를 항해하는 이슬람 상선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 서쪽과 바다를 통해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8 나라 출신 기사들로 구성된 성 요한 기사단은 프랑스 대혁명 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장에 나선 1798년 프랑스 군대에 항복을 하고 이 섬을 넘겨줬다. 1800년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영국 해군이 몰타에 주둔하면서 1816년부터는 비엔나 회의결과에 따라 정식으로 영국령이 되었다. 1964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여전히 영연방에 속해 있다. 나폴레옹에게 항복한 성 요한 기사단은 그때 본부를 로마로 옮겼다.

숙소가 있는 세인트 줄리안과 수도인 발레타는 거의 붙어 있는데 월요일 아침이라서 영국식으로 차량이 좌측 통행을 하는 도로가 매우 혼잡했다.
오늘의 첫 방문지인 고조(Gozo) 섬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페리 터미널로 달렸다. 일본인 현지 가이드가 사도 바울이 처음 표착했던 작은 섬 세인트 폴 아일런드(St. Paul Island)를 가리킬 때쯤 최웅철 인솔자가 바울이 이곳에 당도하게 된 경위를 개략적으로 설명해줬다.
나는 금년 상반기 온누리교회가 CGN을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했던 사도바울의 선교사역을 자세히 공부했던 만큼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솔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이크를 넘겨 받아 다음 사항을 부연 설명하였다.

첫째,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유대인들이 신성모독으로 고발하여 로마 관헌에 체포되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를 해칠 움직임을 보이자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가아사랴로 급히 이송되었다. 바울은 로마법상 범죄자가 아니므로 로마 총독의 재판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때 유대왕 아그립바와 함께 이 재판을 참관하였던 그의 누이 버니게 공주는 나중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개선장군 티투스 의 약혼녀로서 로마에 따라갔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이 '제2의 클레오파트라' 퀸을 원치 않는다고 강력 반대하는 바람에 결혼도 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티투스 황제는 쉴새 없이 콜로세움 건축, 폼페이 재난을 처리하다가 81년 재위 2년 만에 돌연 열병에 걸려 죽었다.
둘째,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청구하여 로마군 백부장이 다른 죄수와 함께 그를 배편으로 로마로 호송하기로 했다. 바울과 선원들은 크레타 섬에서 월동을 하고 바다가 잔잔해질 때 로마로 갈 것을 요청했으나 백부장은 지체없이 떠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지중해의 폭풍 유라굴로를 만나 보름 가까이 표류하다가 배를 버려야 했다. 그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 모두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날 것임을 말씀했다며 로마 병정과 선원, 다른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셋째, 멀데아 섬에 표착한 그들은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말리고 있었다. 그때 땔나무에서 독사가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으나 그는 무사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를 본 족장이 병환 중인 그의 아버지에게 가서 사도 바울이 안수함으로 그를 낫게 했다. 이상은 사도 바울을 수행하였던 누가가 사도행전(Acts 28)에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사도바울 일행은 몰타의 동굴에서 석 달을 머물다가 시칠리아를 거쳐 로마로 떠났다고 한다.





몰타 섬과 고조 섬을 오가는 페리 보트는 자주 있었는데 우리는 티켓의 바코드 확인을 받고 승선했다. 그리고 30분 만에 고조섬에 당도했다.
고조 섬의 도로는 매우 협소하고 길가에 주차한 차량들도 많았다 (외지인은 차량 소유 금지). 하지만 관광버스 기사는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현지 가이드와 상의해 가며 우리들에게 한 곳이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해안 절벽이 아름다운 곳, 유럽 사람들이 해수욕,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많이 찾는 곳, 소금을 생산하던 천일염전 등을 둘러보았다.



오전 중의 하일라이트는 타피누 성당(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Blessed Virgin of Ta' Pinu)이었다. 사도바울의 복음 전파 덕분에 고조 섬과 몰타 섬에는 도합 36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타피누 성당은 어느 병자가 성모 마리아를 본 후 병고침을 받았다는 신유의 이적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성당 안에서는 적잖은 수의 신도들이 예배를 보고 있었다.
그 영향인지 성당 안팎에는 성모 마리아와 천사가 병을 고쳐주는 모습을 한 벽화와 조형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리고 성당 앞 마당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가 병풍처럼 세워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피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는 모습, 가룟 유다의 밀고로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체포되는 장면에 눈길이 갔다. 내일 가 보게 될 성 요한 성당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와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와 세례 요한은 모계로 친척 뻘이었으며 세례 요한은 메시아 예수가 곧 오심(初臨)을 알리고 그에게 세례를 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의 비리(非理)를 비난하다가 그의 의붓딸 살로메의 모함으로 참수를 당했다. 그리고 예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노선에 반하는 주장을 펴다가 가룟 유다의 배신, 유대교 지도부의 고발로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했다.
두 분 다 기득권층(Establishment)에 맞섰다가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누리지도 못한 채 희생되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가 막강한 권세를 가진 세속의 왕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겸손한 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례 요한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연극 공연 무대에서 맥없이 퇴장 당하고 말았다.



우리 일행은 좁은 도로를 이리저리 돌아서 몰타 섬에서 최초로 미슐랭 온라인 가이드에서 추천을 받은 Ta' Frenc 레스토랑으로 갔다.
입구의 간판에 몰타의 숨은 보석(Hidden Gem)이라고 써놓았다. 또 안젤리나 졸리와 저명 인사들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으로 보아 꽤 유명한 식당인 것 같았다. 식당 건물 밖에도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 시설이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을 감사히 여기고 메인홀 식탁에 둘러 앉아 환담을 나누었다.
시칠리아에서는 날씨가 변덕스러웠으나 몰타에서는 해수욕도 할 수 있는 날씨였다.
프랑스 식 퓨전 요리도 모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으므로 초년 고생 후에 안락함을 누리는 인생살이 같다고나 할까.




디저트까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와 우리 일행은 빅토리아 시타델(Victoria Citadel)로 갔다.
시타델이란 외적이 침입해 왔을 때 성 밖에서 일하던 사람을 불러모아 안전하게 피신하게 하는 요새화된 성채를 말한다.
카르타고 인이나 사라센 해적들이 야간에 기습 침투하여 주민들을 노예로 붙잡아 갔으므로 시타델로 피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고 한다. 시가전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시타델 안의 골목길을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만들어 놓은 게 수긍이 갔다.














고조 섬 일정을 마친 우리 일행은 페리를 타고 몰타 섬으로 돌아왔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외관을 기아 전기차(Kia EV3) 광고로 도배한 노선버스를 보고 불현듯 애국심이 일기도 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휴식을 취하면서 내일 귀국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저녁 만찬은 미리 메뉴를 조사하여 기대를 품기도 했으나 음식을 내오는 게 너무 느렸다.
우리는 올리브 유와 발사믹 소스를 병 하나로 만든 것을 이리저리 뜯어 보거나 앞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현지인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며 음식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리 내외는 참다 못해 메인 요리로 나온 생선을 절반만 먹은 후 호텔을 빠져나와 주변을 산책했다.
바로 호텔 옆에서 여러 군데 카지노가 성업 중이었다. 또 의류 잡화를 파는 점포들이 즐비한 상가와 맥도날드, 버거킹, 스타벅스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 업소도 있었다.
우리는 언제 또 몰타에 올 수 있을까 이야기하면서 지중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 몰타 2: 발레타 성 요한 대성당, 임디나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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