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일찌감치 아침식사를 마치고 인천으로 곧장 보낼 수하물과 기내에 들고 탈 것을 구분하여 짐을 꾸렸다. 몰타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날아갔다가 잠시 체류한 다음 서울/인천 행 터키항공 여객기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8시 50분 G(ground)층에 집합하여 카드키를 반납하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의 마지막 관광지는 몰타의 현 수도인 발레타(Valletta)와 초기에 성채를 구축하여 1530년까지 수도로 삼았던 임디나(Mdina)였다. 관광을 마친 후 5시까지 몰타 공항으로 가서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탑승해야 한다.


160년 이상 영국령으로 있던 몰타는 1964년 9월 독립을 하고 영국왕을 군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였다. 1974년 공화국이 되었는데 그 당시 몰타에선 영국에 편입시켜 하원 의석을 갖자는 여론이 다수였다. 하지만 정작 영국에서는 몰타의 전략적 가치가 줄어들고 다른 영연방 국가에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견지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몰타는 지금도 영연방으로 남아 있으며 2004년에는 EU에 가입하였다.[1]
우리는 트리톤 분수대가 있는 발레타 광장에서 도보 관광을 시작했다.
1964년 독립을 기념하여 세운 여인의 조각상, 1913년 몰타에서 열린 성체(聖體) 대회를 기념하여 건립한 '왕이신 그리스도' 동상이 서 있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에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성경 말씀처럼 예수님 머리 위에 비둘기가 앉아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인솔자의 설명을 들으며 걸어갔다. 도시 방비를 위해 해자까지 갖춘 시티 게이트를 지나 의사당 건물이 있는 발레타의 메인 스트리트로 접어들었다. 팔라먼트 빌딩의 벽면은 몰타 특산인 꿀벌의 벌집 모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누가가 듣고서 사도행전에 기록한 '멀데아'란 지명도 꿀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열주 기둥만 남아 있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터가 나왔다. 2차대전 당시 독일공군(Luftwaffe)의 폭격으로 전파가 되었고, 그때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재건을 하지 않고 있으나 지금도 종종 공연이 열리고 있다 한다.
독일군 폭격 당시 한 블록 떨어진 성 요한 대성당에도 폭탄이 떨어졌으나 독일 기사단의 기도소만 파괴되었을 뿐 다행히도 전체적으로 무사하였다.
몰타 사람들은 이곳 출신 예술가들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194명에 달하는 화가, 도예가, 조각가, 사진작가의 작품이 며칠 후부터 APS Bank의 후원으로 전시회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몰타 어디를 가든지 보이는 붉은 바탕에 8개의 뾰족한 꼭지가 있는 하얀 십자가는 몰타 기사단(Order of Malta, St John's Cavalier)이 독일군 공격을 잘 막아낸 공적을 기려 영국의 조지 국왕이 수여한 훈장을 표상화한 것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기사단장(Grand Master) 궁전이 나왔다. 그 앞 광장에는 1522년 로도스 섬을 잃고 각지를 떠돌다가 1530년 몰타 섬에 정착하게 된 성 요한 기사단을 이끌었던 발레타(Jean de la Valletta, 1557-1568 재임)의 동상이 서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발레타는 말을 탄 기사가 아니라 오른손엔 종이 두루말이를 왼손엔 검의 손잡이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1세가 몰타가 그의 선박을 나포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1565년 오스만 군대를 동원하여 몰타를 포위 공격하였을 때 적은 병력을 가지고 이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는 몰타 섬을 살기 좋은 곳, 방비하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진력했다. 오른 손의 종이는 몰타 지도였던 것이다.



이곳에 큰 구경거리가 있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항만을 향해 예포를 쏘는 어퍼 바라카 정원(Upper Barrakka Garden)이 나왔다.
전쟁 때는 항구를 지키는 포대였지만 지금은 일정 시간에 예포를 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Time-Gun Museum이었다. 전망대의 벽에 새겨진 해설을 보니 이곳에서는 과거 여러 차례 발레타 항 포위 공격(Great Siege)을 격퇴한 전적이 있다고 써놓았다. 워낙 몰타 섬이 지중해 해상통행의 안전을 보장(또는 위협)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보니 불가피한 숙명이었다.
2차 대전 당시에도 독일군은 이탈리아에서 북아프리가 전선으로 가는 병참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몰타를 맹폭하고 발레타 항을 포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몰타 섬의 해안은 절벽이거나 모래와 엄폐물이 없는 해변이어서 상륙작전이 거의 불가능했다.



발레타의 도심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관광객들을 싣고 꼬마 열차도 오고갔다.
우리는 몰타의 시그너쳐 성당/뮤지엄이라 할 수 있는 성 요한 성당을 구경한 다음 느긋하게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외관이 아주 소박한 바로크 양식의 성 요한 성당(St John's Co-Cathedral)은 마치 군대 병영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입장하는 사람의 소지품을 샅샅이 검사하고 색깔 있는 음료수는 버리도록 했다.
막상 안에 들어가보니 전혀 딴판이었다. 예배당이 엄청 크고 화려했으며 관람객들로 넘쳐 났고 환기와 냉방을 위해 곳곳에 선풍기를 틀어 놓았다.




로마 가톨릭에 속한 성당이지만 제단과 천정에는 성 요한(John the Baptist)의 그림과 삶이 장식되어 있었다.
성당의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아래 성 요한 기사단의 역대 단장과 기사들이 묻혀 있다고 했다.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을 막아내고 성당을 지었기 때문일까 벽화나 조형물은 평화나 온유함이 아닌 군대식으 전투하는 인상을 주었다. 성당 안에는 고해소가 아니라 기사단을 구성했던 8개 나라의 언어와 조형물로 장식된 기도실(Oratory)이 있고 그 중의 하나에는 유명한 카라바지오[2]의 그림 "세례자 요한의 참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카라바지오의 또 다른 그림 "글을 쓰는 성 히에로니무스"(Saint Jerome Writing)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허용된 제한된 시간에 성당 안을 대강 돌아보고 화장실까지 다녀온 후 밖으로 나왔다. 실은 이곳이 정문이지만 출구(Exit)인 셈이었다.
한쪽 종탑에는 시계가 3개 걸려 있었는데 바늘이 각기 다른 글자와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몰타 시계탑에서는 중앙의 큰 시계가 시간을, 아래 오른쪽은 요일을, 아래 왼쪽은 날짜를 가리킨다고 했다.
전시작품 중 카라바지오의 해골 그림 'Memento mori'에서는 다가오는 죽음과 시간의 덧없음을 나타낸 반면 종탑의 시계는 요일과 날짜,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기사단 계율의 철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점심 예약 시간까지 다소 여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도심에서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골목마다 쇼핑이나 연극, 커피와 음료, 먹기리를 살 수 있는 상점이 즐비했다. 어느 소극장 앞에서는 시대극 분장을 한 배우가 나와서 관객들에게 연극 내용을 설명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 내외는 한 곳이라도 더 보기 위해 골목길을 죽 내려갔다.
그랬더니 발레타의 반대편 항만이 나오고 건너편에는 고층건물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이곳에 아파트를 짓는다면 뷰(眺望)가 끝내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확인했거니와 발레타는 양 옆으로 항만을 둔 반도형 지형이었다. 그 옛날 이곳에 터를 잡고 요새를 공고히 한 발레타 기사단장의 혜안(慧眼)이 경탄스러웠다.



12시 20분 점심을 먹으러 간 Moon S:un 식당에서는 이번 여행 중 처음 먹어보는 한식이 나왔다.
한국식 스파게티라 할 수 있는 잡채와 김치가 나왔고 메인은 비빔밥에 강원도식으로 빛깔이 검은 된장국이었다.
후식은 빛깔과 모양이 예쁜 모듬 과일이어서 모처럼 대접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일행 중의 한 분이 한국에서 들고 온 멸치볶음을 내놓아 맛있게 먹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젊어서 잘 먹던 서양음식이 질리고 어머니가 해주셨던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식당에서 나올 때 재미있는 경고판을 보았다.
오후 11시 이후에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고성방가할 경우 벌금에 처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곳 주민들을 존중하라'는 마지막 구절이 영국의 신사도를 연상케 했다.


버스를 탈 수 있는 시내투어 버스 정류장 앞에는 성 요한 기사단이 운영하던 병원 건물이 있었다.
구호사업에 주력했던 기사단이었던 만큼 병원시설도 잘 갖추어 놓았으니 지금은 국제회의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마지막 행선지인 임디나(Mdina)에 있는 빅토리아 요새(Victoria Fortress)를 찾아갔다.
고조 섬에 있는 시타델과 같은 목적으로 축조된 성채였다. 오후 2시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메인 게이트로 들어갔다. 뒤돌아보니 아치 문 위에는 유명한 세 사람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었다.
프롤로그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독사에 물렸어도 무사했던 사도 바울이 중앙에, 그 오른편에는 성경을 들고 기록하는 누가, 왼편에는 몰타의 수호 성인 아가타 성녀가 순교할 때 잘린 유방을 들고 서 있었다.
발레타에서는 성 요한 기사단이 몰타에 정착한 후 그들이 어떻게 분투 노력하였는지 보여주었다면, 임디나의 세 사람은 몰타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막간을 이용해 임디나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Carmelite Priori) 옆 성모수태고지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제단과 천정, 벽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of Our Lady)와 아기 예수를 묘사한 성화가 그려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화려해 보였다.
성당 문을 나오면서 옛날에는 역량있는 사제의 주도 하에 신앙심 돈독한 신자들이 재물을 바치고 손꼽는 장인들이 성심을 다해 성당을 지었을 텐데 지금은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구나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패러다임이 크게 달라져서 교회의 외형보다는 진리를 담은 메시지, 온라인/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말씀 전달방법이 젊은 세대에 더 어필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상으로 수십 곳의 성당을 방문한 이번 여행을 마감하였다.





우리 일행은 임디나 요새 밖으로 나가 공원의 화장실도 이용하고 벤치에 앉아서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관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시칠리아-몰타 여행에서 제일 많이 마주친 관광객들은 크루즈 선을 타고 온 나이 많은 분들이었다. 대부분 연금소득자들로 보였는데 나 역시 앞으로 얼마나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윽고 우리를 공항으로 태워다 줄 버스가 도착하여 우리는 몰타의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고 버스에 올랐다.



이스탄불 공항에 내렸을 때에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일단 라운지에 가서 휴대폰도 충전하고 뱃속을 채운 다음 이번 여행을 결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인천으로 향하는 터키 항공에서는 음료와 식사 모두 극진하게 서비스를 해주었다. 나는 대부분의 비행시간을 잠을 청하며 보냈다.
이윽고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다다랐을 즈음 창밖으로 붉은 노을과 함께 우리 눈에 익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Note
1] 몰타 공화국은 누구든지 25만 유로 상당의 몰타 국채를 사면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다. 추가로 65만 유로 어치의 국채를 사면 국적을 부여한다. 몰타의 여권을 가지면 EU 역내 어느 나라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 중국, 인도의 부호들이 몰타의 황금여권(Golden Passport)을 많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EU 측에서는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몰타의 이른바 국적 장사에 제동을 걸었으나 아직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2] 화가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극적인 명암 대비와 현실적인 인물 묘사를 통해 종교화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그는 폭력적이고 자유분방한 나머지 여러 차례 법적 문제에 휘말렸다. 1606년 로마에서 결투 중 상대를 치명적으로 다치게 하여 살인 혐의를 받고 몰타로 도망쳤다.
카라바지오는 몰타 기사단에 입단하여 '세례 요한의 참수'를 그려 바치는 등 몰타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모종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608년 감옥을 탈출하여 시칠리아로 망명했다. 시칠리아에서는 오랜 친구 마리오 민니티를 찾아가 시라쿠사, 메시나, 팔레르모 등지에서 작품을 남기며 도피 중에도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그의 그림은 내면의 불안과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칠리아와 몰타는 그의 도피처이자 창작의 무대였던 셈이다.
⇒ 에필로그: 시칠리아-몰타 여행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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