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 2025년 새해의 첫 번째 책 소개 날입니다. 오늘은 무슨 마음의 양식이 될 책을 가져오셨나요?
P : 오늘은 목사님, 넓게는 신학자와 종교인들이 쓴 책을 개략적으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들고 나온 책은 온누리교회의 이재훈 위임목사가 쓰신 〈생각을 생각한다〉(두란노, 2017)인데 첫머리에 새해를 맞아 들려주시는 덕담 같은 구절이 있어 먼저 소개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기대하며 맞이하는 사람과 염려하며 맞이하는 사람 등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믿음은 기대를 만들고, 불신은 염려를 만든다. 사탄의 불변의 전략이 있다.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미리 걱정하고, 염려하고,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이유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다 알면 염려가 사라질까? 아니다. 더 염려한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 주시지 않는다. 만일 자신의 성공을 미리 안다면 나태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자신의 불행을 미리 안다면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에 불필요한 일을 한 적이 많다. 대표적인 사건이 가나안 정탐이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명령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그 사건을 회고하면서 해석한 신명기 1장을 보면 가나안 정탐은 원래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믿음으로 들어가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는데 두려움과 불신앙에 휩싸인 이스라 엘 백성이 모세에게 나아가 그 땅을 미리 정탐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었다(신명기 1:21-22 참조).
그 결과 염려가 사라지고 지혜가 생겼는가? 아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우리는 죽을 것'이라고 보고해 온 백성이 더 큰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무르게 되었다. 염려와 두려움은 불필요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것만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돛단배가 항해하듯 인도하신다. 돛단배는 때로 바람이 불면 뒤로 물러서야 하고, 풍랑이 일면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바람이 없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돛단배는 방향은 있지만 명확하게 정해진 길로 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기차역처럼 인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앞으로 거쳐갈 역들을 다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꺼번에 모든 역을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 필요 하다면 바로 다음 역을 알려 주실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모두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청사진 대신 나침반을 주신다. 나침반은 앞으로 나가야 쓸모 있다. 하나님이 현재 보여 주시는 방향으로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내일이라는 미래를 주신다. 성공한 사람만 아니라 실패한 사람에게도 내일을 주신다. 과거에 성공한 사람에게는 두 배의 내일을 주시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절반의 내일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내일을 하루씩 우리에게 주신다. 어제 하루 실패했다면 오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하루를 주신다. 28-31쪽.
G : 아 그렇군요. 성경에는 이사야서, 다니엘서를 비롯한 여러 예언서가 있고, 예수그리스도가 예언의 성취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 역시 여러 차례 예언을 하신 바 있지만 먼 앞날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은 경계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P : 네, 맞습니다. 예수님은 수제자인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스승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 하신 것, 또 가룟 유다가 스승을 돈 받고 팔 것이니 어서 네 할 일을 하라고 하신 것 등은 1주일 내로 닥칠 일을 말씀하신 것이었어요. 화려하고 웅장한 헤롯 성전이 무너져 돌 위에 돌 하나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 예언하신 것도 40년 후에 일어날 일이지만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당신의 부활을 예고하시기 위해 비교를 하신 것이었지요.
비유를 하자면 예수님의 예언은 주의와 경고, 격려를 하기 위한 '나팔 소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스승의 사후 티베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나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 또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은 사도들에게 목숨 걸고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신 예언의 말씀었지요.
G : 사실 목사님들은 주일예배, 새벽기도회 때마다 설교를 하시니까 그것을 활자화하면 설교집이 되고, 조금 읽기 쉽게 고치면 신앙수필이 되는 게 아닌가요? 또 교인들이 목사님 저서를 많이 사보고 할테니 독자층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요.
P : 그렇긴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유명을 달리 하셨지만 한경직 목사, 조용기 목사, 하용조 목사가 유명하셨고, 살아계신 분 중에서는 홍정길 목사, 김진홍 목사, 강준민 목사의 저술이 지금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진홍 목사가 젊은 시절에 청계천 판자촌에서 목회 활동을 할 때의 신앙간증을 기록한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초장기 스테디셀러로서의 기록을 갖고 있지요. 불교계에서는 법정 스님이 유명하신 것으로 압니다.
G :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도 여러 분 계시다면서요?
P : 네, 세계적인 매머드 교회를 만들고 세계순회 설교를 하신 분으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세계침례교연맹의 총회장을 역임한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 또 일본에서 러브소나타 전도집회를 수십 차례 가졌던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가 유명하십니다.
G : 목회자는 아니지만 신앙소설을 써서 유명해진 분도 있지요?
P : 고 최인호 작가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우리나라의 마지막 선승(禪僧)으로 알려진 경허 스님에 대한 이야기 〈길 없는 길〉을 남겼지요. 저는 김성일 장로가 신문에 연재했던 〈땅끝에서 오다〉 소설을 읽고 크게 감화를 받았습니다.
김 장로는 서울공대를 나와 대우건설의 해외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였어요. 그런데 부인이 위암 투병 중일 때 자기가 업무상으로 가정에 소홀했던 것을 회개하고 자기가 부인 간병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글을 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서원을 했다 합니다. 저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성경의 관주가 암호문이 될 수 있다는 것, 예루살렘 성에는 외부 기혼샘의 물을 끌어오는 히스기야 수로 터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또 "일어나 비추어라"가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같은 복음서 중에서도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은 왜 다른 세 복음서와 내용이 다를까 하는 점도 김성일 장로의 소설 〈제국과 천국〉을 읽고 비로소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G :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읽을 만한 외국 유명작가의 책도 소개해 주시면 좋겠네요.
P : 뭐니뭐니 해도 영국 옥스포드 대학 교수였던 C. S. 루이스의 여러 저술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 중에는 팬터지 소설 명 영화로 유명한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도 있지요. 또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The Key of the Kingdom)는 중국에서 오래 선교사로 활동한 가톨릭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인데 신앙의 본질과 인간성, 구원의 문제에 대해 커다란 울림을 주는 명저라 할 수 있어요.
G :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생각한다'에서 신앙인의 관점에서 무슨 생각을 골똘히 생각한다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P : 요즘 시국과 관련하여 다음 구절도 되새겨볼 만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진영 논리와 갈라치기, 그에 따른 묻지마 반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뼈아픈 충고라 할 수 있어요.
공동체 안에 갈등이 일어나면 대개 두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입장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갈등 자체의 심각성보다 더 심각하게 갈등을 확대시키는 입장이다. 갈등의 원인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피는 대신 자신의 왜곡된 감정을 주관적으로 개입시키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두 번째는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해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입장이다. 갈등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려 하지 않고 서둘러 덮어버림으로써 갈등이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에서 긴장과 갈등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아 새로운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의 힘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세계에서 긴장과 갈등은 결코 그 자세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이를 창조적인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긴장과 갈등을 주관적으로 확대시키거나 덮어 버리는 마음은 민주주의에 위기를 가져온다. 그래서 파커 파머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마음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긴장과 갈등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마음의 치유는 믿음을 기초로 한 공동체에서 우선적으로 경험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아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갈등을 통해 다툼과 분열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한 공동체로 변화되어 갈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서로에 대해 자유롭게 반대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름이 인정되지 않고 반대가 허용되지 않는 공동체는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없다. 공동체가 긴장과 갈등으로 인해 쇠퇴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리더의 견해에 무조건적 찬성만을 요구할 뿐 어떤 반대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취급해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 .
우리는 대개 관계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속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맞다고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가 끊어질까 봐 두려워서이다. 사랑 안 에서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해 주기보다는 사랑 안에서 진실을 감추는 두려움을 따르는 것이다.
서로가 더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시하며 때로 반대할 수 있는 관계가 유지된다면, 또 반대 의견으로 관계가 전혀 손상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공동체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자신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아니오'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과 가깝지 않고, 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옳은 의견이라면 기꺼이 "예"라고 찬성해 줄 수 있는 마음 또한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반대할 자유가 인정받고 존중히 여겨진다고 해서 공동체가 저절로 성숙해지지는 않는다.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견에 대한 또 다른 반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결국 긴장과 갈등은 겸손한 마음이 치유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사람 또한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대할 이유를 발견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신의 반대를 절대화하는 것이다. 무서운 교만이다. 자신의 반대 속에 들어 있는 독소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반대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득이나 고집 때문에 반대하는지 마음의 동기를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은 채 그저 반대라는 도그마(dogma,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에 빠져 버린 것이다. 자유롭게 반대 의사를 표현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에 대한 또 다른 반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겸손이다. 겸손한 마음이 기초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성숙한 공동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오늘 이 시대의 한국 사회는 정치, 교육,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파커 파머가 제시한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함을 보여 주고 있다. 대립되는 이슈 이전에 그 이면에 있는 서로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긴장과 갈등에 함몰되는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더 용기를 내어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44-49쪽.
P : 인용이 길어졌지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교회 같은 공동체는 물론 친목단체, 기타 구성원이 다양한 조직, 심지어는 사회와 국가까지도 긴장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것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각자 솔직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어야 하며, 반대를 하더라도 진정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득이나 고집 때문인지 마음을 살피고 반대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G : 목사님 말씀처럼 두 사람 이상 모이면 긴장과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것은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목사님은 마음의 훈련과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사랑 또는 애정이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요.
P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긴장과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도 중요하며 권위주의적이어서는 곤란하고, 민주적으로 각자 의견을 말하고 서로 설득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G : 교회 같은 신앙공동체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금식기도를 통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공통의 가치와 이념으로 뭉친 집단 간의 갈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국의 청교도 혁명, 유럽 여러 나라가 휘말린 종교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같이 총과 칼로 싸워야 하나요?
P : 네, 역사를 보면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를 통해 뽑은 대표가 의회라는 공간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토의하며 해결해는 것이 최선임을 가르쳐주고 있지요. 목사님 말씀처럼 마음의 훈련과 겸손함이 몸에 배인 사람을 뽑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거 철에만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사람, 말만 번지르르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적인 사람은 골라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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