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외국의 법학자가 보기에 예측가능성이 없다 할 정도로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심지어는 교통사고, 소액 채권채무사건을 시민법정의 형태로 열어 TV 중계 하에 재판을 벌이기도 한다. 다음 세 가지 케이스는 2007년 초여름을 뜨겁게 달군 사건들이다.
하나는 우리 교포 세탁업자가 소송을 당한 이른바 "5백억원 바지" 소송이다. 바지수선을 의뢰한 손님이 바지를 잃어버린 세탁소 주인에게 5400만달러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건이다. 피해액이 1천불이 넘지 않았음에도 워싱턴DC 행정법원 판사인 원고는 일반공중에 대한 '고객만족' 서비스 약속을 어겼다 하여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청구액 중에는 앞으로 10년간 다른 세탁소에 가는 데 사용할 렌트카 비용 1만5천달러도 포함돼 있다).
워싱턴DC의 바트노프(Judith Bartnoff) 판사는 6월 25일 "이성적인 소비자라면 고객만족보장(Satisfaction Guaranteed) 서비스가 고객의 불합리한 요구까지 만족시킬 의무가 있다거나 합리적인 법적 다툼까지 포기하라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둘째는 항상 화제를 뿌리고 다니는 힐튼가의 상속녀(heiress socialite) 패리스 힐튼(Paris Hilton)을 재수감하도록 한 LA카운티 고등법원의 결정이다. 패리스 힐튼은 난폭운전(reckless driving)으로 면허가 정지된 상태에서 차를 몰다가 45일 구류형을 받았는데 LA 다운타운의 구치소는 패리스가 형기의 10%를 채우자 석방했다. 그러나 '有錢無罪'라는 여론의 반발에 밀려 재수감되었다가 3주를 더 감옥에서 보낸 뒤에야 석방될 수 있었다. 수감자들로 넘쳐나는 LA카운티의 셰리프는 경범의 경우 형기의 10%를 채우면 전자족쇄를 차고 집안에만 있는 조건으로 석방할 수 있는데 법원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패리스 힐튼은 6월 26일 0시가 지나자마자 구치소를 걸어나왔다(오른쪽 사진). TV방송에서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귀가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등 야단법석이었다.
셋째는 2007년 5월 27일자 LA Times가 탐사보도한 사건으로 나카라과 등 중앙아메리카의 바나나 농장의 근로자들이 현지는 물론 미국에서도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제기하였다는 내용이다. 30여년 전에 바나나 농장에 DBCP(dibromochloropropane)라는 살충제가 살포되었는데 그로 인해 생식능력을 상실한 현지주민들이 농장에서 살충제를 사용한 돌식품(Dole Food)과 살충제 메이커인 다우 화학을 상대로 LA에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라 한다.
DBCP가 인체에 유해하여 미국 식품의약청(FDA)가 그 사용을 금지한 것을 알게 된 미국 로펌들이 이들 대기업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미국 법원은 부적절한 법정지(forum non conveniens)라는 이유로 심리를 거부하였다. 그러던 것을 LA에서 상해(personal injury)사건 전문변호사 버스광고로 유명한 후안 도밍게(Huan J. Dominguez) 변호사가 니카라과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정액검사 결과 정자가 일정 수 이하인 수천명의 주민들로부터 사건을 수임하여 LA 카운티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도밍게 변호사는 원고를 일단 13명으로 하여 시작하였지만 만일 화해(settlement)로 결말이 나더라도 종전보다 훨씬 많은 피해보상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2002년에 니카라과 법원이 450명의 현지근로자에게 4억9천만 달러 배상하도록 명하는 등 손해배상 판결이 잇따르자 돌과 다우는 미국내 강제집행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또 돌식품은 온두라스에서 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바나나농장 근로자들에게 1인당 5800달러를 지급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니카라과 정부는 2000년 자국민에게 유리하게끔 살충제(DBCP)는 생식능력을 해친다고 규정한 DBCP소송촉진법을 시행하고 피고회사가 니카라과 법정에 서기 위해서는 10만달러를 공탁하도록 했기 때문에 니카라과는 미국민에 적대적인 법정지(hostile jurisdiction)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 법원이 더 이상 현지 법원에 소송을 미룰 수 없게 되었고 이번에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재판이 열릴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고회사들이 문제의 살충제가 유해함을 알고 사용했다 할지라도 현지주민들이 건강을 해치게 된 데는 30년 전에 DBCP 말고도 DDT 같은 유동성 살충제, 오염된 식수원 등 여러 가지가 있어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형편이다.
5월 초 LA 카운티 지방법원(LAC Superior Court)의 빅토리아 체니(Victoria Chaney) 판사는 도밍게 변호사에 대해 니카라과 외에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과테말라, 파나마 사건도 병합하여 일괄 심리하기로 하고, 피고에 델몬티, 치키타 브랜드, 셸 석유회사를 추가하도록 하여 올 여름에 벌어질 소송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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