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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오대산 월정사의 성보(聖寶) 박물관

Onepark 2026. 7. 28. 15:25

7월 하순 서울의 염천(炎天)을 피해 평창 700고지[1]를 찾아갔다.

먹구름이 끼고 간간이, 정확히는 곳에 따라(局地性) 비가 뿌렸지만 확실히 서울에 비해서는 아주 시원하여 지내기 좋았다.

이번에는 오대산 월정사부터 찾아갔다. 전나무 숲길에서 맨발걷기도 하고, 그 앞의 오대천 물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스님들은 절 앞으로 계류(溪流)가 흐를 때 물소리가 크게 나도록 바윗돌을 배치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사찰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속세의 먼지를 귀에서 씻어내라는 의미였다.  

 

* 월정사 입구의 금강연(金剛淵). 왼편에 맨발로 걷기 좋고 다람쥐가 뛰노는 전나무 숲길이 있다.

 

이번에는 월정사 입구의 조선왕조실록 박물관과 성보(聖寶) 박물관도 들러보기로 했다. 마침 박물관 앞 연못에 흰 연꽃(白蓮)이 피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월정사에 올 때마다 뭐가 급한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아나갈 때에는 "다음 기회에" 하며 두 곳 박물관은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 이유는 오대산 월정사와 그 위의 상원사를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그에 얽힌 사연을 잘 알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찰 입구에 현대식으로 박물관이 세워졌을 때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월정사와 상원사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에 내가 아는 지식을 보태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중국에 유학을 다녀온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월정사를 창건했다. 자장율사가 얻어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절에 모셨다 하여 불상이 없는 적멸보궁을 짓고 그 앞에 팔각구층 석탑을 세웠다.

조선조 세조 임금이 피부병(욕창)이 심해 새로 중창한 상원사에 들렀을 때 날이 더워서 그 앞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그 때 지나가던 동자승더러 등을 밀어달라 했는데 욕창이 씻은 듯이 나았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동자승이 다름아닌 문수보살이었던 것이다. 그에 보답하여 산 아래 전답을 월정사와 상원사에 하사하였다.

 

 

 

조선조 때 왕조실록을 오대산을 포함한 전국 네 곳의 사고(史庫)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었으나 후일 복간하여 오대산 사고에도 비치하였다.

여기에 조선왕실의궤 (王室儀軌: 의식의 궤범,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가 추가되었다. 조선조에서는 임금남의 순행 때 그 의전 및 절차, 동원된 인력자원과 물자를 그림과 함께 기록해 두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를 탈취해간 일본으로부터 반환 받았던 것이다.

세조 임금의 강원도 순행 당시 상원사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왕실의궤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월정사 성보박물관과 나란히 전시하게 된 것이다.[2]

 

 

세조 임금의 강원도 순행 당시 임금님 앞에서 별시(別試)가 실시되었다.

당시 세조 임금이 친히 내준 과제(科題: 과거시험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1. 강원도는 땅이 넓지만 사람이 많지 않다. 어떻게 해야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구를 늘릴 수 있겠는가?
  2.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출세하기 힘든데 어떻게 하면 세상에 나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겠는가?
  3. 땅이 척박하고 길이 어여, 나가서 세상에 쓰이고자 하여도 멀지고 나가지 못하는 자가 어떠했겠는가?

위의 문제는 과거시험의 유형인 시부송책(詩賦頌策) 중 시무책에 해당하는 주관식 논술형에 속한다. 만일 유력한 해결 방안이 나온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조선왕조실록 박물관에서 나와 회랑을 거쳐 성보 박물관으로 갔다.

불가에서 성보(聖寶)란 부처(佛), 부처의 가르침(法),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스님(僧) 삼보(三寶)를 일컫는다.

성보 박물관 입구에서는 속세의 신발은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고 들어갔다.

1층 로비에는 월정사 경내의 팔각구층석탑 모형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홀로 들어가는 연꽃으로 난간을 장식한 석조 다리를 건너자 지혜를 상징하고 여러 이적을 행한 문수동자의 좌상이 방문객을 맞았다.

 

* 평소 적광전 앞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던 석탑(국보 제48호) 상륜부의 금속장엄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 삼척 영은사에서 야외 법회 때 걸어놓았던 괘불(掛佛)도 이곳에 모셔 놓았다. 왼쪽은 부처님 진신사리 전시홀 입구.
*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 좌상 (국보 제221호)
* 월정사 육수(六手) 관음보살상
* 월정사 팔층구층석탑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

 

1층 별실에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전해 받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가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슬리퍼마저도 벗고 맨발로 올라가 예(禮)를 갖춘 다음 두꺼운 유리 상자에 들어 있는 구슬 같은 모양의 부처님 사리를 들여다 보았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고요히 사라지신 것(寂滅, Tranquil Extinction)처럼 해탈(解脫)하여 열반(涅槃, Nirvana)에 들 것을 강조한다.

 

자장율사는 신라시대의 여러 명산에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하였다. 그러므로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에서는 불당에 본존불을 두지 않고 불단만 만들어 놓는다.

이와 같이 적멸보궁을 둔 사찰은 아래의 지도와 같다.

 

* 2층 전시홀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2층 전시실에는 오대산과 인연이 깊은 한암, 탄허, 만화 스님 등 여러 고승의 영정과 어록, 저술, 휘호,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원사의 한암 스님은 1.4 후퇴 당시 국군이 소개령을 내리고 인민군이 점거할까봐 사찰에 불을 지르려 할 때 법당에 들어가 정좌를 하였다. 한암 스님은 어서 나오라고 재촉하는 국군 장교를 보고 "나는 불제자로서 부처님께 소신공양할 태세가 되어 있으니 어서 불을 놓으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국군은 하는 수 없이 문짝만 떼어다 불을 낸 시늉만 하고 물러갔다. 그리하여 상원사는 온통 불에 타버린 월정사와는 달리 동종과 여러 보물이 무사할 수 있었다.

유불선에 능통하고 예지력이 뛰어나셨던 탄허 스님은 미구에 전쟁(動亂)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귀한 불교서적과 물품을 미리 대피시키셨다고 한다.

 

* 휘호를 쓰는 탄허 스님과 병풍의 한문 시. "푸른 대나무는 서리가 내려도 여름처럼 푸르고, 소나무는 눈 속에서도 봄철 같구나"는 뜻
* 비로자나불 속에서 나온 복장(腹藏) 은함. 80× 80× 80cm 130kg의 은으로 조성
* 포터블 예배용 부처상

 

1970년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사리구와 은제도금 여래입상, 보자기에 싸인 원형 청동외합과 동경 등이 발견되었다.

2025년에도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벌였는데 고려시대에 제작한 상륜부와 받침 옥개석을 제외하고 보개(寶蓋) 아래의 중간 부분을 보수하였다.  

상륜부의 금속장엄물은 부처님의 지혜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으로 중생계와 초월계를 연결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금속장엄물로 인해 고려석탑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더하게 되어 이 석탑은 국보(제48호)로 지정되었다.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금속장엄물
* 팔각구층석탑을 해체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여러 사리구와 은제도금 여래입상, 동경

 

조선왕조실록 박물관과 성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대산의 사찰에서 이처럼 많은 보물이 쏟아져 나왔다니 놀랍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한 곳의 공간에서 고이 보존하고 연구를 하는 한편 대중의 이해와 인식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삼보(三寶)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非불교도의 입장에서 월정사가 돈 많이 드는 불사(佛事)를 많이 벌이는구나 눈을 흘긴 적이 있었는데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절 입구에 이렇게 박물관을 지어 놓고 중생은 보지 못 하고 알지 못 하는 절 안에 감춰져 있던 수많은 보물을 공개하고 전시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는 방문객, 특히 관심 있는 학자와 지식인들의 책무라는 깨달음이 왔다.[3]

 

우선 나부터도 전시장에서 많은 사진을 찍어 두었던 만큼 어려운 한문일지라도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해석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4]

성보 박물관 바깥에는 잔디 정원이 잘 가꿔져 있고 흰 연꽃이 피어 있는 청량지에서는 오리떼와 잉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이들 생명체는 한강의 발원지 근방에서 극락을 체험하고 있는 듯 싶었다. 

갑자기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온 나는 평소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인연이 새삼스럽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 수련과 연꽃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 노란색 작은 꽃들이 모여서 피어 있는 마타리. 어린 잎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

 

Note

1] 2018년 동계 올림픽을 유치할 때의 슬로건이 'Happy 700 Pyeongchang'이었다. 평창(대관령읍)의 평균 고도가 해발 700m여서 살기에 쾌적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여름철 평균 기온이 서울보다 5℃ 정도 낮고 모기 같은 날벌레가 없어서 지내기가 좋았다. 이러한 기후와 지형적 특성을 이용해 배추, 무, 대파, 양파, 당근 같은 고랭지 채소 재배를 많이 한다.

 

2] 세조 임금의 강원도 순행 때에도 왕실의궤가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것은 왜란 이후 선조 연간에 만들어진 것이며, 200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나폴레옹이 1798년 불과 스물아홉의 나이로 이집트 원정에 나섰을 때 학자들로 구성된 부대를 따로 편성하였다. 비록 나폴레옹의 원정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와 동행하였던 학자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활동에 힘입어 루브르 박물관의 지하실은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스핑크스와 각종 유물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특히 이집트에서 가져온 로제타石의 상형문자를 샹폴리옹이 1822년 해독에 성공함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유례없이 이집트學(Egyptology)이 발달하였다. 그 덕분에 1836년 이집트 정부가 선물한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기꺼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세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람세스 2세와 같이 이집트의 역사를 소재로 한 문학과 영화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4] 성보 박물관에서는 초서 달필이라 뜻을 알 수 없었던 고승의 한문 휘호를 AI에게 해석해 보라고 했다.

 


Gemini는 곧바로 기미년(1979) 탄허 스님이 쓰신 고려시대 명승 백운경한(白雲景閑) 스님의 선시(禪詩)라 말하고 다음과 같이 읽고 풀이했다.

 

  • 力未千疲無變寬 (역미천피무변관) 비록 힘이 다하여 일천 번 피로할지라도 여유롭고 넓은 마음은 변함이 없네.
  • 但作楓楊晩野分 (단작풍양만야분) 단지 단풍나무와 버드나무 늘어선 저녁 들녘의 풍경을 지어낼 뿐이로다.
  • 千意林林途偏多 (천의림림도편다) 수많은 생각들이 숲처럼 무성하니 갈림길 또한 참으로 많기도 하구나.
  • 茅字雖披見也惑 (모자수피견야혹) 띠풀로 지은 문자를 비록 헤쳐 펼쳐본들, 바라보아도 눈앞이 미혹할 뿐이네.
  • 非是源山爻溪變 (비시원산효계변) 근원이 되는 산과 흘러가는 시냇물이 어찌 변화에 불과하겠는가?
  • 遙了典孔憑誰他 (요료전공빙수타) 멀리 진리의 경지(典孔)를 깨닫는 것을 다른 누구에게 의지하리오.
  • 黃鶯枝上一聲~ (황앵지상일성~) 나뭇가지 위 노란 꾀꼬리의 한 소리 또 한 소리 들려오니
  • 日暖風和岸柳靑 (일난풍화안류청) 날은 따스하고 바람은 화창하여 언덕의 버드나무 푸르기만 하구나!

전체적인 의미는 "만물의 복잡한 현상과 마음의 번뇌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참된 본성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연의 순수한 푸르름과 평정심을 얻게 된다"는 깊은 선(禪)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다만, ChatGPT, Gemini 모두 아래의 현판 글씨는 강원도 홍천 소재 '孔雀山 壽陀寺'임에도 이를 '원통산 고해사'(圓通山 苦海寺)라고 읽는 등 제대로 판독하지 못했다. 

 

5] 오대산 박물관마을에 관한 정보는 아래 사진 참조.

주차장은 식당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되고 2시간까지는 무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