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의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에이스 호텔의 조식은 뷔페가 아니고 아메리카식, 에그베네딕트 등 6가지 세트 메뉴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식이었다. 당연히 여러 종업원이 테이블마다 주문을 받으러 돌아다니고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기본으로 제공했다.
아메리카식을 시키니 서니 사이드 계란 2개와 아보카도, 베이컨, 크롸상 등이 놓여 있는 큼직한 트레이를 갖다주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호텔 중정을 구경한 후 교토의 아침 출근 풍경을 보기 위해 큰길로 나섰다.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낙엽이 지는 가운데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 보도를 걷는 사람, 자전가를 탄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갔다.
오늘은 교토 시내의 사찰 여러 곳을 순방할 예정이어서 조금 느긋하게 일정을 시작했다.
인솔자가 시내의 많은 도로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의 영향으로 관광버스의 출입을 제한하므로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교토에서 처음 방문한 사찰은 겐닌지(建仁寺)였다. 1202년 가마쿠라 시대에 에이사이(明菴榮西) 스님이 창건한 절로 일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찰 중의 하나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강조하는 선종(禪宗)에 속하는 임제종의 본산 사찰이다.
건축 양식은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화려함보다 단순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의 사찰과 다른 점은 대웅전에 큰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고 천정에 우람한 용 두 마리가 용트림을 하며 하늘을 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히려 정갈하게 가꾸어진 정원에는 상징적인 모양을 한 바위와 나무가 배치되어 있고, 잔돌을 깔아놓은 마당에는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려놓아 함부로 밟고 다닐 수 없게 해놓았다. 일본 대갓집 사저의 마당에도 잔돌을 깔아놓았는데 이는 닌자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닌자와는 관계 없는 사찰에서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미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설이 있다(미국 산마리노 헌팅턴 미술관의 일본식 정원 가이드의 해설).
이와 같이 일본의 선종 불교는 출가승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본래 일본의 불교는 6세기에 백제에서 전래되었으며, 당나라에 구법승이 유학을 가서 직접 불경을 전수받아 오기도 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세습 귀족에게서 전쟁터에서 칼싸움을 하는 사무라이들에게로 권력이 옮겨감에 따라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敎宗)보다 순간적인 깨달음을 안겨주는 선종(禪宗)이 교세를 확장하였다.
그 결과 사찰들이 권력계급의 비호를 받고 크게 흥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고유의 민족신앙인 신토(神道)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신억불(崇神抑佛) 정책으로 인해 불교계가 초유의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의 사찰은 문을 닫거나 철거되었으며 불상 역시 크기를 줄이고 벽장 속에 감추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어찌보면 일본의 불교는 오랫동안 지배계급의 비호를 받았으나, 근대화ㆍ서구화를 서두른 메이지 시대부터 침체기를 겪고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명상이나 기상이변을 초래하는 용(龍)의 가호를 비는 수단으로 변질된 감이 있다.여기서 한국과 일본 불교의 차이점이 유래한다.
한국에서도 한때 흥왕했던 불교가 조선 지배계급의 숭유억불 정책에 띠라 산속으로 들어갔고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을 조직하여 왜적에 맞섰다. 사명대사는 전후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벌여 왜병에 잡혀간 조선인 포로 3천여명을 구출해오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국 불교는 지속가능한 생명력(sustainability)을 기를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의 불교는 귀족과 무사 계급의 비호를 받아 도심에 자리잡고 세를 확장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숭신억불(崇神抑佛), 폐불훼석(廃仏毀釈) 정책으로 존폐의 기로에 처했다. 그리하여 명상이나 날씨의 안정을 비는 수단 내지 장례식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 뿌리 한일(韓日) 불교의
성쇠(盛衰)를 가른 건
성리학과 임진왜란
일본 불자(佛子)들에게
명치유신은 태풍 지진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었네
겐닌지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복을 비는 사찰인 로쿠하라미츠지(六波羅蜜寺)로 걸어서 갔다.
마침 국보급 유물을 대중에 공개 전시하는 마지막 날이라 하여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들어갔으나 일본인의 성정에 맞는 불교 유물일 뿐이었다.
가마쿠라 시대에 구야(空也) 선사가 세운 이 절은 한 때 수많은 신도들로 북적였다. 불상을 실은 수례를 끌고 다니며 불법을 전한 구야 선사는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구야 선사가 입을 열면 여섯 보살이 입에서 나와 극락세계로 가는 여섯 바라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사찰기물이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으나 1969년에 복원이 되었다.
복(福)을 비는 절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조용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어서 오전의 마지막 탐방지인 유명 도예가 기념관을 찾아갔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에는 집집마다 화초 화분을 밖에 내놓아 길 가는 행인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도예가 카와이 칸지로(河井寛次郎, 1890-1966)가 1937년 직접 설계하여 자택 겸 공방으로 지었다. 안에 들어가면 아주 널찍하여 소형 및 대형 가마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는데 오늘날에도 옛 모습 그대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입구에는 그의 좌우명인 "새로운 자신을 보고 싶다. 일하자" 휘호가 걸려 있고 그의 도예 작품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2층 계단이 가파르지만 줄을 잡고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게 줄에 구슬을 달아 놓았다. 또 무거운 물건을 오르내릴 수 있게 도르레도 설치한 것도 볼 수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 앉아 있으려니 절로 일본 단어 잇쇼켐메이(一生懸命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한다'는 뜻)가 생각났다.
카와이 도예가도 이 방 책상에 앉아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거나 창밖을 내다보며 명상에 잠겼을 것 같다.
한쪽 벽에는 논어에 나오는 樂在其中(그 안에 즐거움이 있다) 족자가 걸려 있었다.
카와이 도예가에게는 그런 성정이 부족하여 늘 조바심을 치고 걱정이 많으니까 일부러 큰 글씨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교토의 포시즌즈 호텔, 식스 센스 호텔 들 1박에 2백만원 하는 럭셔리 호텔이 있는 큰 길을 지나 교토 국립박물관 앞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랐다.
교토 박물관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내년 뱀의 해를 맞아 특별전(Serpentine Delights)을 연다는 포스터와 박물관 구내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즐거워졌다.
점심 식사는 정원이 아름다운 니시오 야츠하시(西尾八ッ橋) 음식점이었다.
메뉴는 부채 모양의 오니기리와 곤약, 계란말이였는데 이 집이 청어절임 국수(니신 소바)니가 유명하다고 해서 서대권 회장의 배려로 두 사람 당 한 그릇씩 교토의 명물 소바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교토의 힙한 디자인과 트렌디 숍을 탐방할 차례였다.
여성 참가자들은 츠카키 스퀘어 건물 안에 있는 카키모토 오우치 직물 전시관과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미나 페르호넨(Mina Perhonen) 숍을 관심있게 둘러보는 것 같았다. 미나 페르호넨 디자이너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사고 싶은 옷가지와 가방, 악세사리가 구매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교토에 여러 날 묵다보니 중심을 흐르는 가모가와와 고수부지 산책로, 니조(二條)와 산조(三條) 대교가 익숙해졌다.
니시키시장(綿市場)에서 튀김도 사먹고 몇 가지 식재료 쇼핑도 했다.
그리고 시장 입구에서 일행을 만나 저녁식사 장소인 초밥집으로 갔다.
초밥집은 19명의 단체손님을 한꺼번에 맞을 수 없지만 이 셀프초밥집은 그게 가능했다. 김밥 싸는 재미를 손님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아 쉽게 터지지 않을 두툼한 김과 고슬고슬한 쌀밥에 스시용 생선 몇 점과 20여 가지의 속재료를 큰 트레이에 담아 내왔다. 간장을 바르는 조그만 붓도 있었다.
ㄷ자 형 테이블에 마주보며 앉아서 환담을 나누면서 식재료 하나씩 맛을 보며 김에 싸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일식 조리사가 해주는 초밥만 먹어 버릇해서는 그 묘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다.
⇒ 교토 단풍 여행
⇒ 교토의 미술관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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