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마지막 날(1.21) 밤 사이에 내린 비가 가랑비가 되어 계속 내렸다.
우리 일행은 리조트 Breeze Hall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아침 9시부터 운행하는 금산 보리암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조금 일찍 출발한 것이다.
남해의 독일인 마을에 이어 새로 개장한 미국인 마을(입구에 조그마한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음)을 지나갔다.
다도해 경관과 일출을 보기 위해, 또 기도를 하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오늘은 비가 오는 탓에 관광객은 우리 일행 뿐이었다.
보리암은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한반도의 유명한 기도처이다.
고려 말에 이성계가 왕이 될 수 있는지 하늘에 묻기 위해 기도를 했던 곳이다. 그가 기도응답을 받으면 이 산을 비단으로 두르겠다고 서원했다는데 실제로 조선 왕조를 개창한 다음 비단을 하사하려고 했다. 그러자 정도전 등이 백성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그 대신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라 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의 유일한 불교신자인 숙희 누님이 대표로 우리 모두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건강을 지켜주십사는 기도를 하셨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를 다스리는 법"이라는 말씀을 소리내어 읽었다.
산에서 내려와 창선도에서 삼천포로 가는 3개의 연륙교를 건넜다.
다리 아래에는 멸치를 잡기 위한 죽방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죽방멸치는 멸치가 잡힐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맛이 좋아 최고의 품질로 친다.
그 다음 행선지는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탈 수 있는 진주였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민이 함께 먹었다는 육회를 조금 넣은 비빔밥과 쇠고기 무국, 불고기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같은 비빔밥이라도 전주 비빔밥이 그 고장 소산의 풍성함을 즐기는 것에 비해 최소한의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 일행은 남강변의 촉석루와 논개 사당을 찾아갔다.
왜군이 진주성 함락을 축하하는 연회를 촉석루에서 열었을 때 논개가 왜장을 의암으로 유혹하여 그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의기(義妓) 논개의 이야기는 어느 선비의 문집에 소개되어 세상에 널리 퍼졌다.
그러나 논개가 진주의 일개 기생이 아니라 장수현감 최경회의 나이 어린 첩으로 진주성 전투에 참여한 부군을 따라온 논개가 패전 후 낭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논개 이야기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위해 강물에 투신한 연인'으로 각색이 되었다 한다.
이번 남도여행을 결산해 보니 내가 쓴 비용에 비해 몇 곱의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1월 20일 마지막 밤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잊혀졌던 옛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기간에 우애를 다질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자체도 볼거리와 잠자리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각 고장의 특색있는 먹거리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사랑은 가슬 떨릴 때 하고, 여행은 다리가 떨리기 전에 해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 형제들이 이렇게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당장 금년 가을에 남해안 일주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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