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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증권범죄의 전형 Boiler Room (2000)

Onepark 2012. 11. 30. 13:11

뉴밀레니엄의 개막과 함께 개봉된 벤 영거 감독의 〈보일러룸〉은 증권범죄 영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주가조작, 투자사기, 내부자거래 등 온갖 불공정거래를 보여주고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울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무대로 한 영화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M&A를 둘러싼 내부자거래(insider trading)와 배신, 암투를 그린 〈Wall Street〉(1987)는 그 중심인물인 Gekko(마이클 더글라스)가 1980년대 월가를 주름잡았던 이반 보우스키, 마이클 밀켄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겜블(Rogue Trader, 1999)은 싱가포르에서 일본 국채선물에 투자했다가 그 손실은 감추고 이익 난 것만 계상했다가 고배 지진 때 선물시장이 붕괴하면서 유서깊은 영국의 베어링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간 닉 리슨이 주인공이다. 

영화 〈보일러룸〉 은 증권시장에서 작전세력이 거짓 정보를 띄워 주가를 크게 올린 후 개미투자자들이 몰려들면 주식을 모두 팔고 떠나는 주가조작의 행태(이를 pump and dump, 'P&D'라 함)를 보여준다. 워낙 흔한 수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이명박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BBK 사건이 이 영화의 내용과 비슷하다 하여 화제가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

갓 스물을 넘긴 세스 데이비스(지오바니 리비시)는 두 가지 소망을 갖고 있다. 뭐든지 내기를 좋아하는 그는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 그래서 대학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무허가 도박장을 개설했다. 그는 제법 돈을 벌고는 있지만 지방법원 판사인 아버지 마티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퀸즈 칼리지를 중퇴한 세스는 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의 카지노로 블랙잭을 하러 온 사촌 애담이 그와 함께 들른 돈 많은 친구 그렉 와인스타인(니키 캣)을 소개해 준다. 그렉은 세스에게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다며 롱아일랜드에 있는 주식중개회사 J.T. 말린에의 입사를 권한다.

 

말린에 면접을 보러간 세스는 회사의 공동설립자 중의 한 사람인 짐 영(벤 애플렉) 이사로부터 자신의 업무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지, 신입사원도 제대로만 하면 3년 이내에 자기처럼 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회사의 주식브로커는 사람들에게 주식투자를 권하는 콜드 콜을 걸어 주식을 판매하고 구전을 받는 것으로, 세스는 주식브로커 자격시험인 시리즈 7 시험에 합격해야 독자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트레이더인 고든 게코를 롤모델로 삼아 주식 중개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판사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매력적인 여자친구 애비 핼퍼트(니아 롱)의 사랑도 얻을 수 있다.

열심히 일하던 중 세스는 그의 회사가 이른바 '펌프 앤 덤프'를 실행하는 중개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개인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기업가치가 형편 없는 회사의 주식을 사게 하는 작업(pump)이 끝나면 오른 값에 그 주식을 팔고 따나는(dump) 것이다. 주식 브로커와 중개회사는 큰돈을 벌지만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 기회를 놓치고 돈을 잃는다. 말린 사의 주가조작을 탐지하고 FBI 수사관은 세스를 내부 정보원으로 삼기 위해 그를 조여오기 시작한다.

 

 

세스는 시리즈 7 시험에 합격하고 정식 브로커가 된다. 세스의 고객은 식품회사의 구매담당자인 해리 레이너드(테일러 니콜스)이다. 주식투자를 망설이는 해리에게 주가가 오를 것을 장담하고 그에게 주당 8달러에 100주를 팔아넘긴다. 그와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자 해리는 세스에게 따지려다고 오히려 세스의 감언이설에 속아 쓸모없는 주식을 더 사들인다. 급기야 해리는 주식투자로 큰 손해를 보고 저축한 돈과 가족을 모두 잃게 된다.

그동안 잘 나가던 세스는 해리가 폭망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회사를 그대로 둬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한다. 판사인 세스의 부친은 J.T. 말린이 주가조작과 투자사기를 일삼는 범죄집단이라고 펄쩍 뛴다. 세스가 회사 내부 움직임을 염탐해보니 설립자들이 회사를 버리기로 하고 거래기록을 파기하는가 하면 은밀히 직원들과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사명(社名)으로 회사를 차릴 준비를 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렇게 되면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할 가망도 없는 지루한 법적 싸움에 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세스는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이 카지노를 하다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합법적인 주식중개업을 하려고 했으나 자기도 모르게 범죄적인 일을 하였다고 눈물로써 회개한다. 그리고 자신이 J.T. 말린의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회사를 응징하는 일에 아버지가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결국 세스는 증권거래법 및 NASD(미국 전국증권업협회)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FBI에 체포된다. 그의 전화통화 거래내역은 고스란히 녹음이 되어 FBI 손에 들어간다. FBI는 세스에게 그가 J.T. 말린에 대한 수사에 협조하면 면책특권을 주되, 그렇지 않으면 그의 부친이 판사직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세스는 FBI에 협조를 약속하고 말린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한 유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한 세스는 FBI의 지시에 따라 투자거래의 파일을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해 놓고 해리의 투자금도 회수할 방도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그는 회사 설립자인 마이클 브랜틀리에게 세스의 중요한 고객인 해리와 계속 거래하지 않으면 회사가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브랜틀리는 다음번에 공모(IPO)할 주식을 그에게 넘겨주기로 하되, 회사가 주식을 매각할 때까지는 주식을 팔 수 없다는 조건을 붙인다. 세스는 직속 상사인 그렉이 발뺌을 하자 선임 브로커 크리스(빈 디젤)에게 결재 서명을 요청한다. 만일 회사가 FBI 수사를 받고 문을 닫게 되면 선량한 투자자들이 다만 얼마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를 설득한다. 크리스는 마지못해 응하고 FBI 수사를 피해 회사를 빠져나간다. 세스도 J.T. 말린을 떠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그때 여러 대의 FBI 차량이 주차장으로 들어와 회사 임직원들을 체포하고 압수수색할 채비를 한다.

 

감상의 포인트

〈보일러룸〉 은 미국 교포 김경준 씨의 BBK 사건과 대비되면서 재조명되었다.

BBK 사건은 1999년 설립된 투자자문회사 BBK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을 말한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여부가 크게 논란이 되었다. 김경준 씨는 BBK의 대표로서 주가조작을 통해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며, 이후 옵셔널벤처스의 자금 384억 원을 횡령하고 위조여권을 만들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 영화에서처럼 BBK는 투자자들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하며 주가를 조작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았지만. 검찰과 특별검사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실 김경준 씨의 행적은 〈보일러룸〉이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허위 정보, 유령회사의 유망 사업 등으로 투자자를 속이고 주가를 조작하여 부당이득을 챙긴다는 점에서 영화 속 금융 사기와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다.

 

왜 물건 값을 부풀려 받고 상대방을 속이는 일이 상거래에선 비일비재함에도 기업가치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주식거래에서는 엄중한 불법행위로 처벌 받는 것일까?

바로 기업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주식거래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사정을 잘 모르고 시장에 들어온 일반투자자의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지 여러 유형의 불공정거래를 법에 규정해 놓고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다룬 P&D 거래처럼 주식 브로커가 투자자를 현혹시켜 별로 가치가 없는 주식(Penny stock이라 함)을 비싼 값에 사게 하고  자기는 시세차익에 거래수수료까지 받아 챙기는 것은 사기보다도 무겁게 다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증권관련 범죄행위는 연방수사국 FBI의 관할(jurisdiction)에 속한다. 이 영화에서처럼 주식거래가 뉴욕시에 거주하는 사람 사이에 이루어졌다 하더라고 잠재적 투자자는 뉴욕 외의 다른 주, 심지어는 외국에서도 주식을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화이트칼라 범죄, 파산범죄와 마찬가지로 FBI가 직접 수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