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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뉴올리언스에서의 매우 이국적인 체험

Onepark 2007. 6. 1. 11:38

1993-94년 댈러스 소재 SMU 로스쿨에서 유학한 것은 비단 미국법을 공부한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다양한 미국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내 삶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의 유학 경험은 단순히 강의실과 도서관, 기숙사를 오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테마를 찾아 나서는 일종의 모험과도 같았다. 나중에는 모 월간지의 논픽션에 응모할 작정으로 유학생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몇 가지 대담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텍사스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동안 인접주인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New Orleans)는 여러 모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뉴 오를레앙'이라는 이름부터가 프랑스풍이고 문화·제도면에서 유럽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로스쿨의 미국 친구들은 루이지애나가 여전히 프랑스식 법제를 고수하고 있다면서 법공부하기에 골치아픈 곳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대륙법 계통인 중남미법을 공부하는 데는 뉴올리언스에 있는 튤레인 로스쿨(존 그리샴의 법률소설을 영화화한 <펠리칸 브리프>에서 여주인공이 다니던 학교)이 좋다고 하였다.

 

*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뉴올리언스의 상징인 잔다르크 황금 기마상

특히 한국에서 1994년 '예술과 외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연극 "미란다"는 뉴올리언스에서의 직접적인 체험을 떠올리게 했다. 문제의 벗기는 연극을 볼 기회는 없었으나 유학 중에 공부했던 '미란다 고지(Miranda Warning)'이 우선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에 흔히 나오는,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였을 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으며 당신의 진술은 유죄(有罪)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속사포로 읊어대는 고지문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4조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구금 수색이 되지 않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식행위이다.

그 다음으로는 미 연방대법원의 '밀러' 케이스가 생각났다.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음란성의 기준'을 제시한 기념비적 판결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뉴올리언스를 여행할 때 '프렌치 쿼터'(구 시가지)에서 목격한 것은 이러한 법이 실제 적용되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중의 하나는 여행지에서는 주위 시선을 의식할 필요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낯선 고장에서는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 익명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1994년 2월 사육제 기간에 즈음하여 TV에서는 뉴올리언스의 '마르디 그라'(Mardi Gras, 사순절 금식기간 전에 고기를 맘껏 먹고 즐기는 食肉의 화요일)를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가면 쓴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프렌치 쿼터의 거리를 행진할 때 2층 발코니에 기대선 구경꾼들이 밑에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구슬 목걸이(묵주)를 던져주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가톨릭의 근신·참회기간인 사순절을 앞둔 사육제 마지막 날에 더욱이 가면까지 쓴 탓이었다. 영화 <펠리칸 브리프> 첫 장면의 뉴올리언스 미시시피강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석양이 비치는 강하구에 펠리칸 새들이 떼지어 날고 떡갈나무숲 밑둥까지 강물이 넘실거렸다. 멕시코만에 접한 하구는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1994년 스프링 브레이크를 이용하여 동료 유학생들과 뉴올리언스로 여행을 떠났다. 자동차로 10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불란서식 해산물 요리와 프렌치 쿼터에서의 나이트라이프가 빠뜨릴 수 없는 'Must' 코스였다. 뉴올리언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우선 도시의 심볼인 '오를레앙의 성처녀 쟌다크' 황금 기마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빌딩 꼭대기의 회전 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뉴올리언스의 신·구 시가지와 미시시피강을 조망하였다.

 

* 뉴올리언스 프렌치 쿼터의 부르봉 스트리트

프렌치 쿼터는 관광명소답게 볼거리도 많고 관광객도 많았다. 1815년 美-英전쟁때 뉴올리언스 외곽에서 영국군을 격파한 전쟁영웅 앤드류 잭슨(미국 7대 대통령)의 기념공원 앞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이 재즈를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딕시랜드 재즈의 본고장인 셈이었다.

부근의 주립 박물관에는 루이지애나 개척사와 뉴올리언스의 다채로운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과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뉴올리언스는 북미 개척에 나선 프랑스인들이 집단 이주하여 배수시설을 완비한 뒤 미시시피강 하구의 교통 무역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1762년 스페인에 할양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때 다시 프랑스에 귀속되었으며 그 직후 제퍼슨 대통령이 나폴레옹으로부터 15백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역사를 알 수 있었다. 루이지애나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을 동시에 지원하였는데 지리적으로 남부에 가까워 전후 처리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대낮에 보는 프렌치 쿼터는 2-3층의 낡은 건물들만 늘어서 있어 다소 실망스러웠다.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점 부근에만 사람들이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중심가인 부르봉 스트리트는 사뭇 달랐다. 유흥업소에는 벌써 네온사인이 켜져 있었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하릴없이 오가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는 "The House of the Rising Sun"(저속한 가사 때문에 방송금지되었으나 일찌기 프랑스 정부가 식민지 개척을 위해 남녀 죄수들을 배로 실어 보냈던 뉴올리언스 역사를 회고하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을 흥얼거리며 밤에 다시 찾아와보기로 하고 뉴올리언스 관광을 계속하였다.

저녁이 되어 사방이 어두워지자 프렌치 쿼터는 마치 화장을 한 여자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부르봉 스트리트는 휘황한 네온사인 아래 관광객들로 붐볐다. 우리는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오이스터, 새우, 생선 등 뉴올리언스의 명물요리를 주문하였다. 각양각색의 행인들을 구경하며 와인까지 곁들여 하는 식사는 일품이었다.

 

* 뉴올리언스 구시가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리의 재즈 밴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리에 나서니 마르디 그라 축제 때처럼 2층 발코니에서 길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관광객으로서의 익명성을 실감하였다. 그때 갑자기 거리 한쪽이 소란해지길래 가까이 가보니 즉석 스트립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2층 발코니에서 흥미거리를 찾고 있던 어떤 사람이 묵주를 던져주겠다고 제안하자 어느 용감한 여대생이 주변사람들의 부추김을 받아 젖가슴을 막 드러내 보이던 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지척에 순찰을 도는 경찰관이 있었지만 전혀 제지하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조금 후에는 기마경찰까지 나타났지만 2층 발코니에 많은 사람이 몰려 위험하다고 지적할 뿐이었다.

 

우리는 진짜 쇼(?)를 보기로 합의하고 비교적 점잖아 보이는 토플리스 바로 들어갔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 관객들이 상당수 앉아 있었다. 우리는 맥주 한 병씩 시켜놓고 무대 앞자리에 앉았다. 바로 옆자리의 독일 관광객들과 금새 친해져 똑같이 소리 지르고 박수를 쳤다. 토플리스-바텀리스 댄싱이라고는 하지만 그 부위는 살짝 가리고 하는 쇼였다.

본래 미국 사회에서는 청교도 전통에 따라 누드 쇼는 금지하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60년대 들어 사회전반에 리버럴한 풍조가 만연되고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교회와 같은 보수단체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누드 쇼 영업을 제한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수정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6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 구호와 흑인들의 인권운동, 월남전의 확대, 히피즘의 대두와 전통 가치질서의 붕괴는 그대로 헌정사에 반영되었다. 政敎분리의 원칙에 따라 공립학교에서는 기도와 성경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각종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으로서 대폭 신장되었다. 앞서 말한 미란다 경고도 1966년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제도화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음란성 여부를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고 있다. 도대체 누드 댄서가 춤을 추는 것이 사상·관념을 표현하는 행위에 속하는가?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 1조의 해석상 몸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노출시키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어떤 의사표시를 담고 있다면 헌법상 보장되는 표현이라고 인정했다(1991년 '반즈' 케이스).

 

음란의 개념에 관하여 법관은 개인적인 입장을 떠나 어느 한 지역 주민의 도덕관념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 시민에게 보장되는 기본권을 보다 존중할 것인가 균형있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1973년 연방대법원이 판결한 밀러 케이스 이래 '현재의 지역사회 기준'이 제 1의 기준이 되고 있다. 즉, 문제가 된 작품이 "지금의 지역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적용했을 때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호색적인 흥미를 자극하는가" 하는 것을 따진다. 예컨대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에서는 센세이셔널한 사건(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연상하시라)이 뉴욕 맨하탄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사가 될 수 있다.

밀러 케이스의 두번째 기준은 "문제가 된 작품이 그 주의 법에서 금지하는 성적인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이다. 이 문제는 그 지역의 법규정에 의거하여 판단하게 될 것이다. 세번째로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또는 과학적인 중요 가치를 결하고 있는지 여부를 따지게 된다. 이상 세 가지 테스트에 모두 합치될 때라야 그 작품은 음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표현에 있어 사회적 가치가 희박하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질서와 도덕관념에 관한 사회이익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제한이 가해진다. 따라서 너무 외설적인 성인오락용 누드 쇼는 그 한계를 벗어났다 하여 금지되는 것이다.

 

뉴올리언스 프렌치 쿼터에서 한 시간 가량 화끈한 쇼를 구경하노라니 바로 조금 전에 경찰관이 부르봉 스트리트에서의 풍기문란 행위를 굳이 단속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프렌치 쿼터에서의 음란성 기준은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완화되어 있는 탓이었다.

관광지 일정구역을 정해 놓고 "그런 것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놀러오되, 이 구역을 벗어나면 처벌을 받는다" 하는 식이었다. 그 목적이 전통의 답습이건 관광진흥이건 지역경제의 활성화이건 간에 우리 같은 관광객은 '프렌치 쿼터식 자유'를 만끽하면 그만이었다. 세대간, 계층간의 가치관념이 다원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획일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사회에 어떤 구역을 정해 놓고 그 지역에 한하여 자유를 허용하고 그밖의 지역에서는 엄격한 규제를 가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을 좀더 이야기하자면, 지방정부에서 애매한 조례 규정으로 광범위하게 금지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와 관련하여 위헌(違憲)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토플리스 쇼의 경우 누드로 춤추는 것은 허용하되, 외설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유두를 불투명한 덮개로 가리게 한다든가 성기나 음모가 드러나지 않는 차림을 의무화하는 상세한 규정은 합헌으로 보는 것이다. 또 토플리스 바가 있는 지역은 우범지대화할 우려가 있다 하여 영업구역에 제한을 두는 것도 헌법상 허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