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의 2월 8일 주일 2부예배에서 한 젊은 목사님이 설교를 했다.
그 지난 주에 목회사관학교 워크숍이 열렸고 국내와 해외 지교회에서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교역자들이 강단에 설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일반 성도의 입장에서도 어느 교역자가 기도를 잘하고 설교를 잘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설교 제목은 "빌립: 계산을 뛰어넘는 믿음"이었다.
새해 들어 2026년도 온누리교회의 표어인 "나를 따르라"에 맞추어 주일마다 예수의 12사도를 차례로 조명하고 있는데 이 날은 빌립의 차례였다.
차세대 사역을 맡고 있는 최혁중 목사님은 빌립이 예수님의 최측근인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다음의 그룹에 속하였다면서, 공관복음서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으나 요한복음에서는 4차례 등장한다고 말했다. 처음엔 예수님께 나다니엘을 소개하는 장면, 두번째는 오늘 말씀을 전할 '오병이어' 이적의 전 단계로 예수님이 빌립에게 하신 질문, 세번째는 헬라인들의 예수님 면담 요청을 처리하는 모습, 네번째는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말씀드리는 장면이었다.
다음은 온누리교회의 차세대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최혁중 목사의 설교를 간추린 것이다.

빌립은 그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벳세다 출신임에도 전통과 보수주의를 떠나 헬라 문화에 젖어있는 유대인이었다.
빌립이란 이름은 사랑한다는 '필리'와 말을 뜻하는 '포스'의 합성어 '필리포스'(말을 사랑하는 사람)에서 유래하였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그만큼 빌립은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유대인이었으며 유대와 헬라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 사도(Borderline Disciple)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유월절 즈음 갈릴리(헬라어로는 디베랴) 호수 건너편 벳세다로 가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몰려 온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어디서 먹을 것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여야 할까 빌립에게 물으시자 그는 적어도 200데나리온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요한복음 6:5-7). 빌립은 그러고 나서 먹을 것을 어디서 구할지도 문제라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걱정을 했을 것이다.
빌립의 계산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어디서(where)였음에도 빌립의 대답은 어떻게(how)였다. 이 장면을 보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작정하고나서 타산적인 빌립이 달라졌나 시험하신 것이라고 기록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다. 헬라적 세계관과 유대적 세계관의 차이를 알려주고자 하셨다. 나아가 그들이 바라볼 것은 현실의 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임을 보여주려 하셨다. 예수님도 유월절 고난을 앞둔 영적인 삶의 경계선에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다짐을 하셨다(요한복음 12:1).
둘째.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시자 빌립은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었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어디로 갈지 가르쳐주었거늘 어찌하여 어버지를 보여라 하느냐고 반문하셨다.
예수님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면서 성육신(成肉身)의 진리를 가르쳐주었음에도 여전히 이미 본 것, 가시적인 형상을 요구한다고 탓하셨다. 제자들이 어찌하나 보려고 물어보셨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본 사람은 이미 하니님도 본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으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4:9-11).
헬라식 사고에 빠져 있던 빌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세례를 받고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인간은 시험을 통해 겸손해진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교만을 억제하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심히 무능함과 연약함을 증명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치욕, 빈곤, 근친의 죽음, 병
기타의 재난들로 우리를 괴롭히신다.
재난이 있는 동안 우리는 견뎌내지 못하고
곧 굴복한다.
이렇게 자만심이 꺾여 하나님의 힘을 구할 줄
알게 되고 하나님의 힘만이 재난을 이기고
굳게 버티는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 * * *
신자는 이렇게 자기의 병이 증명됨으로써 경고를
받아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며, 육에 대한
사악한 신뢰를 탈피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다. <기독교 강요 3권 8장 2절>

위의 그림은 그림 맞추기 1000피스 퍼즐 그림이다. 그 가운데 한 개의 조각이 빠지면 그림이 완성될 수 없다.
퍼즐 한 조각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필수적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의 삶이 별 의미가 없고 이해 불가하더라도 나의 계산이나 판단만으로는 전체의 그림을 알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전에 속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로마서 8:24, 25>


오늘 설교말씀의 여운이 오래 남아 사랑홀 2층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것은 합리적이고 현실주의자이던 빌립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의 비전을 갖게 된 것도그렇지만, 목사님이 들고 나오신 1000피스 퍼즐의 한 조각 때문이기도 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할 때 가 보았던 아를 중심가의 노란 카페 테라스가 떠올랐다. 반 고흐가 고갱과 다투다가 스스로 한쪽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마을 주민들은 그를 냉대하고 그가 속히 떠나주기만을 바랬다고 한다.
반 고흐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다음에는 마을 주민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반 고흐가 화구를 메고 다닌 곳마다 노면에 표시를 해놓고, 심지어는 노란 카페 테라스 그림에서 흰옷을 입으신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모습이 보인다고 해설을 써붙이기도 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진면목을 보지 못한 빌립이나 반 고흐의 진가를 몰라본 아를 주민들보다 조금도 나을 바 없다.
온누리교회 양재 성전에서 3부예배의 특순을 맡은 뮤지컬 팀이 무대에 올라 오늘 부를 찬양 연습을 하는 게 보였다.
매주 출연하는 뮤지컬 팀이 오늘 처음으로 찬양 연습을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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