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닝성 역사탐방의 중반에 접어들었으므로 나는 Tistory 여행 블로그에 무엇을 모티브로 글을 쓸 것인가 곰곰 생각해보았다.
"안중근 의사, 박지원 열하일기의 길을 따라"도 좋을 것 같았다.
오늘도 6시 30분 지나 2층 조식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카페 라테부터 주문하고 식사량을 줄이는 대신 수박과 중국 멜론인 하미과(瓜)를 많이 먹었다.
다행히 어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하늘이 맑게 개이고 춥거나 바람도 불지 않아 여행을 하기 적당한 날씨였다


버스는 선양 중심가의 호텔을 출발하여 일로 남하했다.
가이드는 중국에서 여행할 때 '좀 간다'는 것은 4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거리라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 어느 친구는 고향집이 오지에 있어서 명절 때 고향에 가려면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7일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향집에 다녀오기 위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보름이니 역시 중국은 '스케일이 크구나' 하고 생각했다.






최복룡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먼 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화젯거리가 많은 몇 분에게 짧은 스피치를 부탁했다.
첫 타자는 6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써서 전달한 강병수 교장선생님이었다. 학교 사진과 함께 "마음 속에 고래 한 마리를 키우자"는 손편지를 보냈더니 학생들 또한 답장을 보내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역사탐방 단톡방에 많은 정보를 올리던 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장학사가 되기 전에 지리 과목을 담당했으며,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다음은 안중근 의사의 행적과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연구하고 있는 강영주 선생이었다. 자기 이름처럼 '영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인문학에 관한 지식 정보를 바탕으로 부산 교통방송의 프로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가 지명을 받았을 때에는 교수 시절부터 마이크를 한번 잡으면 놓을 줄 몰랐다고 조크를 던졌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 국책은행에 다닐 때부터 통일이 되면 북한의 고속도로와 철도 건설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문제의식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그 솔루션으로 민간자본을 유치하는 프로젝트 금융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노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북한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직장에서 승진이 너무 느려 평양지점장을 자원하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였노라 고백했다.
그때 마침 우리가 탄 버스가 단둥 시내에 접어들어 나는 서둘러 스피치를 끝냈다.



이미 점심 시간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곧바로 단둥에 있는 전주비빔밥집으로 갔다. 예상과는 달리 메뉴는 비빔밥이 아니라 중국식으로 식탁 위의 원판 위에 갖가지 반찬을 늘어놓고 조금씩 덜어 먹는 가정식 백반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 일행은 압록강변 공원으로 나가 13:30 출항하는 압록강 유람선을 타기로 하고 조중(朝中) 우의교(압록강 철교)와 6.25 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단교 밑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빠른 분들은 입장료를 내고 단교 위로 올라가 좀더 가까이서 신의주 쪽을 보고 돌아왔다.


압록강유람선은 1시 반 뱃고동을 울리며 선착장을 떠났다.
그리고 이성계가 출병했다가 회군을 한 위화도 옆을 천천히 항해했다. 2년 전의 압록상 홍수 때 흙탕물과 모래로 뒤덮여 있던 것을 새 아파트 단지로 조성하였는데 밤에는 불도 켜진다고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주면을 소총을 든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우리가 탄 유람선은 인공기를 단 북한 경비정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위화도 상단 부분에서 회항한 유람선은 하류쪽으로 내려가 2개의 압록강 철교 밑을 지나 다시 뱃머리를 돌렸다.
선착장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배를 타고 유람했던 시간은 정확히 35분간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일망정 우리가 북한 땅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탈북을 꾀하는 북한주민들에게는 목숨을 건 시간일 것이다.







압록강 선유를 마친 우리 일행은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고 하는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갔다.
본래 실재하진 않았으나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산해관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명나라 식으로 성벽을 쌓은 곳이었다.
처음엔 가벼운 산책 정도로 여겼는데 보기와는 달리 70-80도나 되는 급경사진 계단이 잇달아 나타났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주 힘들게 올라갔다 내려와야 했다. 나는 "무거운 벽돌을 이고지고 성을 쌓은 사람도 있는데 이쯤이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이드는 압록강에서 북한 땅이 지척인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강폭이 좁아 한 발짝만 떼면 넘어갈 수 있는 곳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2년 전의 압록강 대홍수 이후 북한 쪽에 댐을 건설하여 예전처럼 뛰어서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녁 식사는 장백산 숯불구이집에서 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각종 부위에다 조개까지 구워 먹을 수 있는 직화구이집이었다.
주인이 정성껏 만든 효소를 소스로 하여 익힌 버섯과 야채를 함께 먹으니 우리가 낸 여행비를 가지고 이렇게 호화판으로 먹을 수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MZ세대 기준으로 가성비 좋은 음식점이었다.
불판도 수시로 갈아주는 것까진 좋았는데 다만 한가지 실내 흡연이 허용되는 통에 옆자리의 담배 연기가 불어와 우리의 입맛을 떨어트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자 압록강 위에는 저녁놀이 내리고 이윽고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 압록강에 걸려 있는 다리마다 색색깔의 조명을 밝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렇게 평화롭게 강변을 산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의주까지 막힘 없이 다니게 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압록강변 야간 산책을 마친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다롄 프렌드 프라자 호텔로 이동했다.
각자 캐리어를 끌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5성급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크리스마스 장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비현실적으로 키가 큰 야자수 나무가 추운 지방의 인테리어로 어울리는지, 혹시 인조 나무는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1]
중국 내에서는 해외의 인터넷 망에 접속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접경지대인 단둥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2] 하물며 페쇄사회인 북한에 접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Note
1] 중국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호텔이나 음식점 등에서 음양오행과 풍수지리를 따지는 곳이 많았다.
일례로 출입문, 욕실의 방향과 객실의 침대 배치에 신경을 쓴다거나 벽면 장식을 황금빛으로 치장하고 부적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글씨나 그림을 벽에 걸어놓은 것을 많이 보았다.

2] 이번 여행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으나 아래 사진과 같이 외부망 접속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휴대폰은 로밍을 하였기에 네이버 또는 구글 검색이나 카카오톡 통신을 하는 데 지장은 없었으나 내가 직접 운영하는 KoreanLII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처럼 중국 내에서 일반인이 온라인 한국법률백과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면 특수한 용도로 중국의 기관ㆍ단체의 서버가 트래픽 스파이크를 일으킬 정도로 대거 접속하는 것은 차단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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