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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2] 다롄-선양

Onepark 2025. 12. 24. 08:30

역사탐방 기행 둘째 날이 되었다.

오늘은 9:17 다롄역 발 고속철을 타고 선양(瀋陽)까지 가야 하므로 조금 서둘러야 했다.

시차(time lag) 문제 없이 일어나 6시 반에 양식과 중국식으로 된 호텔 조식을 먹었다.

8시 10분 호텔 앞에서 버스에 짐을 싣고 다롄역으로 갔다. 9시에 개찰을 시작하자 우리 일행은 여권과 승차권 검사를 받고 6호차를 타러 갔다. 모두들 캐리어가 큰 만큼 서두르지 않으면 짐 놓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고속철에는 칸마다 어주머니가 짐을 싣는 것을 돕고 교통정리를 해주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내릴 때에도 짐을 미리 꺼내 주었다.

우리 일행은 3석-2석으로 배치된 객차의 2석 줄에 앞뒤로 앉아 갔다.

고속철이 정시에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 창밖으로는 만주 벌판이 펼쳐졌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농업용 비닐하우스가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롄역을 떠난지 정확히 두 시간 만에 선양역에 도착해 100여 m를 걸어 길가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선양은 인구 천만이 넘는 랴이닝성의 성도(省都)이자 군수산업의 중심지이고, 후금(後金)과 만주국의 수도였기에  도시가 활기 차 보였다. 인구도 출퇴근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1200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새로 짓는 고층건물은 모두 특색있게 지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부가 두 갈래로 벌어진 Y자 형 건물을 볼 때는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벌써 점심 시간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후금 고궁(後金故宮) 부근에 있는 200년 된 노포(老鋪) 라오볜 만두집(老邊餃子館)으로 갔다.

 

* 춘절에 수많은 인파로 뒤덮이게 될 선양역 대합실

 

라오볜 만두집은 건물 전체를 만두 음식점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손님들이 줄을 지어 들어갔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6층의 넓은 홀로 갔는데 20인이 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 중앙에는 라오볜 만두가 천하제일이라는 글자가 빨간 팥과 노란콩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집의 만두 가짓수는 200여 개에 달한다는데 우리 일행은 여러 종류의 만두 외에도 陸海空 중국 음식을 느긋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어제부터 중국 음식에 빼놓을 수 없는 고량주와 맥주, 탄산음료를 일행 중에서 한 분씩 차례로 제공해주셔서 우리가 건배사를 외칠 때 식사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지근거리에 있는 선양 고궁을 찾아갔다. 베이징의 자금성과 함께 거의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고궁 앞 대로와 고궁 내부에는 호복(胡服) 차림의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물론 SNS에 자랑하기 위해 호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겠지만 서울의 경복궁처럼 이곳에서도 호복 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입장료를 할인 또는 면제해주는 모양이었다.

 

* 여행 기간 내내 노란 삼각깃발을 들고 우리를 안내한 이 영 가이드가 고궁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 고궁의 문관 전용 출입문
* 고궁 안에서 호복을 단장한 여성이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후금 황제 누르하치, 홍타이지가 대외적으로 정사를 보던 궁전
* 연경으로 천도할 때까지 후금 황제가 내정을 하던 팔각 대정전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 고궁(故宮)은 금년에 2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 창 황실의 후비들이 기거하는 후궁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 청 태조 누르하치의 초상과 淸황실의 평안과 만복을 기원하는 제단
* 궁전 밖 굴뚝은 12자 높이로 청 황실이 12대로 끝날 것을 예언한 셈이었다.
* 고궁 후궁지역의 정자와 연못
* 고궁 밖으로 나오니 각종 면요리 전문 음식점과 사진관이 관광객들을 맞았다.
* 선양에서 소현세자가 거처했던 것으로 알려진 심양관. 지금은 유치원으로 쓰이고 있다.

 

다행히 이번 여행에 동행한 길 위의 인문학자(부산 교통방송 진행자), 전직 고등학교 역사ㆍ지리 교사, 역사소설 작가 여러 분들로부터 틈틈이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과 남한산성 이야기, 선양에서의 소현세자의 행적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에 내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역사넷 사이트에서 조사한 자료를 추가하여 우리가 선양에 가서 알아보기로 한 소현세자의 모습과 행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직후 소현세자는 1637년 자청하여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의 길을 떠났다. 그는 심양관(瀋陽館, 조선관이라고도 함)에 머물며 8년간 인질로서 청 조정의 조회에도 참석하고 홍타이지의 각종 행사에도 동참해야 했다.

청의 요구에 따라 소현세자는 명나라를 공격하는 전쟁에 강제로 종군해야 했으며, 황무지를 개간하여 군량을 조달하는 둔전(屯田) 경영에 참여하여 청나라의 부족한 물자를 채워주었다. 반면 조선을 위해 그는 청의 무리한 공물 요구를 막아내는 외교적 완충 역할을 수행하였고, 둔전 경영으로 얻은 수익을 털어 노예 시장에 끌려온 조선 포로들을 대거 사들여 해방시켜 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심양관에는 조선에서 온 신하와 둔전을 경영하는 백성 수백 명이 기거하여 세자빈이 안살림을 도맡아 했다. 또한 아담 샬 신부와 교류하며 천주교와 서구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할 생각을 갖는 한편 부국강병의 해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귀국 전부터 소현세자는 부왕 인조의 극심한 냉대를 받았다. 인조는 청나라가 무능한 데다 친명 입장을 고수하는 자신을 폐위시키고 신망이 두터운 세자를 왕으로 세울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더욱이 세자가 청의 문물을 받아들인 것도 ‘친청 행위’로 간주하여 노골적으로 정적(政敵)을 대하듯 하였다. 오랜 인질 생활로 심신이 피폐해진 소현세자는 부왕의 냉대와 경계로 인하여 귀국한 지 얼마 안돼 불과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시신의 상태가 흙빛이어서 그가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만일 소현세자가 순탄하게 왕이 되었더라면, 조선은 ‘崇明排金’이라는 허울뿐인 명분론에서 벗어나 국제 정세를 헤아려 실리 외교를 펼쳤을 것이다. 또한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물을 조기에 도입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기고, 꽉 막힌 성리학적 질서에 개방과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 후금의 2대 칸이 되어 조선을 침공하고 明을 멸망시킨 후 淸으로 국호를 바꾼 태종 홍타이지의 초상

 

우리가 선양에 온 만큼 규모와 소장품 면에서 중국 삼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랴오닝 박물관 방문을 빼놓을 수 없었다.

박물관과 과학관은 신도시에 있으므로 고궁이 있는 구 도심에서 40분 이상 걸려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신도시에는 삼성건설이 조성한 대단위 아파트 SR(Samsung Raemian) 단지가 오른쪽으로 보였다. 주차장을 전부 지하화하고 한국식 인테리어를 한 것이 특색으로 인기리에 분양되었다고 한다.

 

* 박물관 1층 로비 벽면에 걸려 있는 만주족의 신화를 묘사한 부조 벽화

 

제한된 시간 안에 여러 전시홀을 돌아봐야 했으므로 시대 순을 따라 3층 선사시대 전시부터 주마간산 식으로 관람을 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까운 고대 요하문명, 홍산(紅山) 문명의 유물을 주의 깊게 살펴본 후 뤼산 박물관의 전시물과 비슷한 중간 시대의 유물은 대강 훑어보거나 건너뛰었다.

흥미롭기는 만주족의 민속,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전시물들이었다. 만주족의 젊은 남녀가 결혼할 때 신부는 붉은 천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혼례를 치르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1층 입구 쪽에 자리잡은 玉공예 전시물을 구경한 다음 약속 시간이 되어 관람을 마쳐야 했다. 오늘이 주말이기도 하지만 모든 전시홀에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청소년들이 시종 진지하게 유물들을 살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랴오닝성 박물관은 이념적 도구로도 쓰인다. 금명간 중화민족 공동체의식 주제전이 열릴 예정이다.
* 청나라 무장 기병의 위용
* 청소년들이 전시물을 살펴보며 즉석 토론을 벌였다.
* 이 장면을 보니 신랑 신부는 운명적인 만남을 갖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전원 박물관 입구에 모였다. 지구 모양의 대형 구(球)에 시시각각 조명이 달라지는 과학관 앞을 지나 다시 버스를 타고 선양 구시가지로 나왔다.

서탑(西搭) 앞에서 버스를 내려 간판과 상품마다 한글이 쓰여진 코리아 타운을 둘러보았다. 거리는 매우 혼잡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무슬림이 운영하는 식당이므로 돼지고기를 뺀 소고기와 양고기가 주된 메뉴였다. 우리는 소고기, 양고기를 야채와 함께 뜨거운 육수에 익힌 다음 소스에 찍어 먹는 중국식 샤브샤브를 즐겼다. 후식으로는 수박과 멜론, 오렌지가 무한 리필로 차려져 있었다. 

* 티벳 불교사찰의 백탑. 이 일대를 서탑가(西塔街)라고 부른다.
* 서탑가에는 조선족이 모여 살며 음식점, 상점 등을 운영하며, 북한 음식점인 평양관도 있다.
* 테이블 중앙의 육수 끓이는 용기가 순한 맛, 매운 맛으로 나뉘어 있어 각자 기호에 따라 고기를 익혀서 먹었다.

 

둘째 날 선양에서 투숙할 호텔은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스위소텔이었다.

서양난 화분 아래 털모자를 쓴 눈사람이 Merry Christmas 카드를 들고 있는 것 외에는 호텔 안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조명등 장식도 없었다.

현지 가이드가 설명하기를 전에는 백화점도 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젊은이들 역시 예사로 철야를 하며 크리스마스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연임을 하고 미-중 갈등이 고조된 뒤로는 정책이 보수적으로 흘러 크리스마스 날도 그저 그런 보통날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온 것은 아니기에 중국말로 '메이꽌시'(没关系)였다. 

 

* 이튿날 아침에 촬영한 스위소텔의 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