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가 되자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경희대 서울캠퍼스는 벚꽃이 유명하다. 정년을 맞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벚꽃이라 여느때와는 감동이 달랐다. 결혼을 앞두고 벚꽃 아래서 웨딩 화보를 찍는 신부처럼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자 본관 앞 분수대 잔디밭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로 하루종일 북적였다. 벚꽃이 절정을 이루던 날 학생들에게 이기철 시인의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을 들려주었다. 이날 하루만큼은 시험이나 취업 걱정을 벗어놓고 벚꽃 그늘에 앉아보라고 말했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