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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샹그릴라에서 발견한 천마(天馬)

Onepark 2013. 6. 1. 16:25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윈난(雲南)성은 중국의 소수민족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윈난성에는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52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그중에서 인구 5천명이 넘는 소수민족만 해도 25개나 된다고 한다.

짧은 기간의 차마고도-샹그릴라 여행 중에서도 나시족(納西族), 이족(彝族), 장족(藏族, 티베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여행 가이드는 조선족 젊은이였다.

 

2013년 봄 (사)남북물류포럼이 기획한 東西물류·교역로 탐사 프로그램의 하나인 차마고도 탐방에 필자도 참가하게 되었다. 마침 아시아나항공이 윈난성 리장(麗江)으로 직항편을 운행하여 짧은 기간에 다녀올 수 있었다.

차마고도는 중국 윈난성에서 티베트로 가는 무역로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KBS TV에서 차마고도를 답사한 다큐가 방영되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茶馬古道”(Ancient Tea Route)란 이름이 붙은 것은 송나라 때부터 해발 3천∼4천m의 험한 산길을 현지의 나시족이 나귀나 야크에 말린 차, 소금 등을 싣고 가서 티베트 말과 모피, 약재와 맞바꾸는 물물교환 교역을 했기 때문이다.

주로 육식을 하는 티베트인들은 중국차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았고, 보이차의 원산지인 윈난성의 나시족은 티베트산 튼튼한 말은 중국에서 군사용으로 인기리에 팔리는 것을 보고 험한 산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나라 때 열리기 시작한 북방의 실크로드보다 200년가량 앞선 셈이다.

 

차마고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호도협(虎跳峽) 트레킹이다.

호랑이가 건너뛰었다는 협곡 위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좁은 산길이 나 있었는데 그 옛날 짐을 가득 실은 나귀와 사람이 이 길을 오갔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치아토우(橋頭)에서 “빵차”라 불리는 봉고차로 옮겨 타고 중도객잔(Halfway Guest House)까지 험한 산길을 올라갔다. 중도객잔에서는 바로 눈앞에 옥룡설산(玉龍雪山 위룽쉐산)과 하바쉐산(哈巴雪山)의 기막힌(fantastic) 장관이 펼쳐졌다.

 

이튿날 아침 일찍 중도객잔에서 출발하여 트레킹에 나섰다.

그 옛날 험로를 무릅쓰고 茶馬의 물물교환에 나섰던 것은 값나가는 잉여물자를 필요한 물품으로 맞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숙성시켜 말린 차잎을 납작하게 포장하여 나귀의 양편에 25-30kg씩 싣고 떠났다.

나시족 남자들이 낙석과 산사태, 산적의 위험을 무릅쓰고 몇 달씩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면 여자들은 온갖 집안일을 하면서 소금을 채취하였다고 한다. 옛날 바닷물이었던 지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볕에 말려 만드는 소금(紅鹽)은 값비싼 인기품목이었다.

 

대표적인 3D업종에 해당하는 이 일을 나시족 사람들은 숙명처럼 알고 수행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샹그릴라(香格里拉)까지 큰 도로가 개통되면서 나시족 사람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리장 교외의 옥룡설산 기슭의 대형 공연장에서는 나시족*의 삶과 운명을 그린 “인상 리장”(印象 麗江, Impression Lijiang) 이라는 장예모 감독의 드라마가 1시간가량 펼쳐졌다. 500여 명의 나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젊은이들이 스케일이 큰 이 공연에 투입되고 있었다.

* 나시족은 “나” “너” 같은 말투나 지게, 대(竹)소쿠리 같은 용품으로 미루어 고구려 유민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여강의 麗자 역시 고구려의 한 글자라는 것이다. <참고자료>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나를 불러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한 법이다. 비록 불평을 입에 달고 살더라도 일을 할 때가 좋지 않겠는가.

나귀 역시 짐을 싣고 갈 때는 고역이었겠지만 차마고도가 트레킹 코스로 바뀐 뒤에는 관광객들을 태우는 용도 외에는 쓸 일이 없어 종족번식마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근로자들이 집단소송을 벌인다고 하자 중소기업인들은 치솟는 인건비로 인해 사업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다시 한 번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영화 속에 나오는 샹그릴라(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튼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묘사한 고산지대 속의 이상향)를 현실 속의 대도시로 탈바꿈시킨 중전(中甸) 부근의 푸다춰(普達措) 국립공원에 갔을 때였다.

일행과 해발 3705m의 수도호(屬都湖) 호반을 산책하면서 무심코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그 안에서 천마(天馬)가 달리고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흘러 들어간 기마민족의 염원을 담아 그린 하늘을 달리는 하얀 백마, 영락없이 경주 천마총에서 보았던 바로 그 천마였다.

자유자재로 하늘을 오가는 천마처럼 유연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야말로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전략인 것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