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상춘] 봄꽃 철 지난 감상기

Onepark 2025. 5. 6. 20:40

신록(新綠)의 계절 5월이 왔다.

새잎이 돋고 봄꽃들이 한 차례 피고나면 숲에서는 연두빛 잎들이 점점 짙어져 간다.

전에는 우리 주변에서 화신(花信)이 개나리-진달래-목련-벚꽃-철쭉-라일락 순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요즘은 지구온난화 탓인지 개나리 필 때 목련과 벚꽃도 거의 동시에 피어 정신이 없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시 "창밖은 5월인데"를 보면 '라일락 꽃길',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라며 꽃향기를 맡지도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는 딸 서영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느껴진다. 지금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어느새 계절이 이렇게 한 달씩이나 앞당겨졌나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 꽃인듯 잎인듯 연두빛이 아름다운 황금조팝나무

 

5월 초 연휴 기간 중에 강원도에 놀러 갔다가 라일락꽃이 피기 시작하고 벚꽃, 살구꽃 은 한창이며 홍황철쭉이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정원을 볼 수 있었다. 바로 평창군 방림면 고원로에 자리잡고 있는 평창보타닉가든이다. 

개장한지 7년이 된 이 식물원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다른 곳보다 봄꽃이 한참 늦게 피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5월 중순이 되어야 봄꽃이 만개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을 단풍은 다른 곳보다 조금 일찍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말 입춘 지난 춘설에 발왕산 산정에서 기막힌 설경(雪景)을 구경했던 것처럼 강원도 高지대는 계절의 시간표가 달라 깜짝 선물을 안겨주곤 한다. 

 

* 추위에 약한 식물을 가꾸기 위한 온실의 내부

 

평창 일원에는 주목과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숲이 있고 양떼 목장과 한우 목장도 있으며, 대관령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열을 지어 서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역사가 오래 된 봉평허브나라농원이 있고 개인이 조성했다가 국가에 기부한 한국자생식물원에서는 온갖 이색적인 식물군상과 멸종위기 식물들을 엿볼 수 있다. 이색적으로 설립자가 만든 100회 마라톤 기념공원과 소녀상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남자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곳 보타닉가든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고 할까 각기 개성이 있어 보여 찾아다니는 재미를 갖게 해준다.

 

* 카페 옥상에서 바라보니 식물원을 주변 산세와 어울리게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꾸며놓았다.
* 뒷산에는 잣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고 한다.

 

가슴 설레이며 꽃 찾아다녔건만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아
아쉬움만 남았네.
우연찮게 들른
한 식물원에서 한가득
봄꽃들이 피어난 것을 보았네.

 

 

Looking for flowers off season,
I'm left with nothing
but disappointment.

Surprisingly,

A botanical garden
in a remote highland
Shows spring flowers in bloom.

 

* 벚꽃인줄 알고 구글렌즈로 검색해보니 개복숭아꽃이라고 한다.
* 카페 옥상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옆에 활짝 핀 서부해당화

 

지금 확장공사가 한창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도 쉽고, 입장권을 들고 가면 식당과 카페에서 값을 할인해 준다. 반려견도 데리고 입장할 수 있다.

다만, 온실이나 야외에 이색적인 꽃이 많이 있음에도 꽃나무 이름 태그가 없어서 약간 아쉬웠다. 물론 네이버나 구글에 식물 사진을 찍어 올리 즉석에서 그 이름을 알려주는 앱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이 늘상 부지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보타닉가든의 숨은 보석인 철길 산책로는 따로 안내판이 없어서 커피나 식사를 마치고서 그냥 지나쳐 갈 뻔했다.

넓은 정원에서 사진 찍기도 좋고 영화 〈건축학개론〉의 남녀 주인공처럼 안심하고 철길을 걸을 수도 있다. 

 

* 초여름의 길목에서 연못가에 활짝 핀 분홍빛 꽃잔디
* 꽃길 사이로 철길이 한없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연못에는 부들이 다음 시즌을 예약하고 있었다.

 

강원도 평창에서 뒤늦게 봄꽃들을 눈에 가득 담아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서울 우리집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몇 년째 소식이 없던 게발선인장이 분홍빛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또 그 옆에서는 금년 들어 여러 번째 호야 카르노사가 연분홍 꽃을 매달고 있어 기뻤다.

나로서는 1주일에 한 번씩 물만 주었을 뿐인데도 제 소임을 다하는 화분의 꽃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 1주일 만에 물을 주러 갔다가 발견한 게발선인장꽃(왼쪽)과 호야 카르노사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