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 봄꽃 철 지난 감상기
신록(新綠)의 계절 5월이 왔다.
새잎이 돋고 봄꽃들이 한 차례 피고나면 숲에서는 연두빛 잎들이 점점 짙어져 간다.
전에는 우리 주변에서 화신(花信)이 개나리-진달래-목련-벚꽃-철쭉-라일락 순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요즘은 지구온난화 탓인지 개나리 필 때 목련과 벚꽃도 거의 동시에 피어 정신이 없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시 "창밖은 5월인데"를 보면 '라일락 꽃길',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라며 꽃향기를 맡지도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는 딸 서영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느껴진다. 지금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어느새 계절이 이렇게 한 달씩이나 앞당겨졌나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5월 초 연휴 기간 중에 강원도에 놀러 갔다가 라일락꽃이 피기 시작하고 벚꽃, 살구꽃 은 한창이며 홍황철쭉이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정원을 볼 수 있었다. 바로 평창군 방림면 고원로에 자리잡고 있는 평창보타닉가든이다.
개장한지 7년이 된 이 식물원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다른 곳보다 봄꽃이 한참 늦게 피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5월 중순이 되어야 봄꽃이 만개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을 단풍은 다른 곳보다 조금 일찍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말 입춘 지난 춘설에 발왕산 산정에서 기막힌 설경(雪景)을 구경했던 것처럼 강원도 高지대는 계절의 시간표가 달라 깜짝 선물을 안겨주곤 한다.
평창 일원에는 주목과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숲이 있고 양떼 목장과 한우 목장도 있으며, 대관령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열을 지어 서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역사가 오래 된 봉평허브나라농원이 있고 개인이 조성했다가 국가에 기부한 한국자생식물원에서는 온갖 이색적인 식물군상과 멸종위기 식물들을 엿볼 수 있다. 이색적으로 설립자가 만든 100회 마라톤 기념공원과 소녀상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남자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곳 보타닉가든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고 할까 각기 개성이 있어 보여 찾아다니는 재미를 갖게 해준다.
가슴 설레이며 꽃 찾아다녔건만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아
아쉬움만 남았네.
우연찮게 들른
한 식물원에서 한가득
봄꽃들이 피어난 것을 보았네.
Looking for flowers off season,
I'm left with nothing
but disappointment.
Surprisingly,
A botanical garden
in a remote highland
Shows spring flowers in bloom.
지금 확장공사가 한창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도 쉽고, 입장권을 들고 가면 식당과 카페에서 값을 할인해 준다. 반려견도 데리고 입장할 수 있다.
다만, 온실이나 야외에 이색적인 꽃이 많이 있음에도 꽃나무 이름 태그가 없어서 약간 아쉬웠다. 물론 네이버나 구글에 식물 사진을 찍어 올리 즉석에서 그 이름을 알려주는 앱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이 늘상 부지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보타닉가든의 숨은 보석인 철길 산책로는 따로 안내판이 없어서 커피나 식사를 마치고서 그냥 지나쳐 갈 뻔했다.
넓은 정원에서 사진 찍기도 좋고 영화 〈건축학개론〉의 남녀 주인공처럼 안심하고 철길을 걸을 수도 있다.
강원도 평창에서 뒤늦게 봄꽃들을 눈에 가득 담아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서울 우리집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몇 년째 소식이 없던 게발선인장이 분홍빛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또 그 옆에서는 금년 들어 여러 번째 호야 카르노사가 연분홍 꽃을 매달고 있어 기뻤다.
나로서는 1주일에 한 번씩 물만 주었을 뿐인데도 제 소임을 다하는 화분의 꽃들이 한없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