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여행] 일본의 하이브리드 문화 체험, 하코네 여행기

Onepark 2007. 6. 1. 13:21

"Hybrid"란 혼합, 합성이란 뜻이다. 육종학자는 잡종강세를 이용하여 우량한 형질의 하이브리드 품종을 만들어낸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당연히 하이브리드 제품부터 고려한다.

 

도쿄만의 오다이바에 있는 토요다 자동차의 전시장에 들렀을 때에도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 팜플렛은 가솔린과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설명하면서 팥앙금빵을 예로 들었다. 서양에서 들여온 빵에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팥앙금을 합쳐 팥앙금빵을 만든 것처럼 시동을 걸 때에는 전기를, 주행할 때에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에너지 절약형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 오다이바에 있는 토요다 자동차의 하이브리드카 전시장
* 갓 만든 팥앙금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 기무라 제과점 앞에서

 

그런데 도쿄의 중심가인 긴자의 미스코시 백화점 맞은편 기무라야(木村家) 제과점에서 인기리에 팔고 있는 단팥빵은 보다 진일보한 형태였다. 팥앙금빵을 처음 만들어 판 본가답게 168엔(약 1700원)의 정가를 붙인 빵은 쫄깃쫄깃한 빵 재질에다 팥앙금 위에 커스타드 크림까지 얹어 매우 이색적인 맛을 냈다.

2005년 2월 말 겨울방학을 이용해 도쿄와 후지산, 하코네를 여행하면서 느낀 인상은 일본 문화에는 이와 같은 "하이브리드" 요소가 강하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숙소(Grand Pacific Meridian)가 있는 오다이바도 그 모델로 삼았던 런던의 도크랜드(Dockland)와 비교하였을 때 이러한 점이 두드러졌다. 매립지에 첨단 건물이 즐비한 신도시를 건설하고 도심부와 완전자동의 無人경전철으로 연결한 것은 비슷하지만 도크랜드는 금융센터와 주거지 중심으로 개발한 반면 오다이바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쇼핑몰, 전시장, 방송국 중심으로 개발하여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들게 한 점이 달랐다. 잘 정비된 신흥도시에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하여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Young Town"으로 만든 것이다.

 

* 젊은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오다이바 쇼핑몰의 쇼윈도우
* 오다이아바 무인 경전철 유리카모메에서 바라다 보이는 레인보우 브리지

 

사실 일본이 수입한 박래물품 중에는 본 고장에 없는 개량제품이 적지 않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워크맨으로 탈바꿈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휴대전화에 디지털 카메라를 합치고, 디지털 카메라의 용량을 올려 비디오 카메라처럼 동영상을 찍을 수 있게 한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번 여행 중에 기가 막힌 "하이브리드 명소"를 보았다. 나리타 공항에 가기 전에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나리타야마(成田山) 가로변의 매화꽃도 일품이었지만, 나리타야마 신승사(新勝寺) 옆의 자동차 안전운행을 비는 기도처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이 절은 창립(開基) 1070주년의 기념불사(佛事)가 한창인 대찰(大刹)이었는데, 그 부근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서 영화를 보는 드라이브인 씨어터처럼 자동차를 타고 기도하는 기도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 나리타야마 신승사의 3층 목탑
* 차를 탄 채로 무사고 기도와 예불을 드릴 수 있는 드라이브인 기도처

 

이번 여행 중에 롯폰기 모리타워를 직접 둘러본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일본 사람은 아직도 아파트(일본 사람들은 "맨션"이라 함)보다는 주택을 선호한다고 한다. 2차 대전 후 低개발 상태로 남아 있던 도심지의 4백여 주민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으나 모리부동산개발은 이들에게 대단한 제안을 하였다. 후지산이 보이는 고급 맨션과 부동산개발이익의 일정 부분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 방식은 도심 재개발의 새로운 이정표(formula)가 되었다. 이리하여 2003년 4월 오픈한 롯폰기 힐즈는 서울의 63빌딩과 같은 도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등장하였다.

마침 모리타워의 53층에 있는 모리(森)미술관에서는 1950년대 이후의 건축과 도시설계의 조류를 보여주는 전시회(Architect Lab)를 열고, 50층에서도 도쿄와 뉴욕, 상하이의 축소모형을 전시하고 있었다. Louis Vuitton의 디자인 전시회(Universal Symbol of the Brand) 관람료와 전망대 입장료까지 도합 1,800엔이 들었으나 비록 다리는 아팠지만 건축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좋은 구경을 한 셈이었다.

 

* 롯폰기 모리타워 광장의 랜드마크 거대한 거미 조각상 앞에서
* 모리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쿄 타워 부근의 도심 풍경
* 도심의 소란스러움과 소음이 완전 차단된 모리 정원

 

롯폰기 힐즈의 강점은 여러 가지 Attraction Point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곳에는 전망대와 식당가 외에도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아사히 TV방송국, 뷰티 센터, 모리 정원, 심지어는 神社까지 두어 많은 사람들이 찾게 하였다. 물론 인접한 롯폰기 지하철역과 지하보도를 연결하여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놓았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일본을 속속들이 체험하기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일본적인 것을 맛보고 느끼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여행일정 중의 중요한 부분은 일본 사람들이 성산(聖山)으로 여기는 후지산을 가까이 찾아보는 일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富士見)의 조망권을 높이 쳐주고, 꿈에 후지산을 보면(오다 노부나가는 꿈에서 후지산을 보고 천하를 평정했다 함) 재수가 있으므로 복권을 산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해발 3,776m의 후지산이 어느 쪽에서나 비슷하게 보이는 원추형이기도 하지만 만년설에 덮여 성스럽게 보이고 무엇보다도 1년에 보름 정도만 자태를 드러내므로 신비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 유황 증기가 피어오르는 하코내 오와쿠타니 계곡
* 맑게 개인 아침 마침내 자태를 드러낸 후지산

 

이번에 3박4일로 여행을 하는 동안 맑은 날씨에 후지산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게다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왼쪽 창가에 앉았기에 항로의 왼편으로 보이는 후지산을 똑똑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내일 모레가 삼일절인데 후지산을 본 것을 행운이라 할 것까지는 없어도 일본 사람들이 재수있다고 여기는 인생의 몇 번 없는 찬스를 잘 살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륙하는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만년설에 덮인 후지산

 

하코네 여행기

1999년 3월 도쿄 출장 길에 하루 틈을 내어 하코네(箱根)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하코네라면 도쿄 주민은 물론 일본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유명한 온천 휴양지가 아닌가. 도쿄에 사는 동료직원은 하코네에는 기차를 타고 가서 호수에서 뱃놀이도 하고, 등산 기분도 내고 온천욕도 할 수 있으며, 운 좋으면 후지산까지도 불 수 있다고 자랑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숙소인 시나가와(品川) 프린스 호텔을 나서 지하철 야마노테(山手)선을 타고 신주쿠(新宿)역으로 가 민영철도(私鐵)로 갈아탔다. 오다큐(小田急)의 프리패스(하코네의 각종 교통기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왕복할인권; 대인 5,500엔, 평일 4,700엔)를 끊어가지고 특급 로맨스카 1등칸에 올랐다.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역 구내에서 도시락과 오차를 사 가지고 탑승하였다.

 

 

차창 밖으로는 잔뜩 흐린 하늘 아래로 우중충한 풍경이 이어졌다. 다행히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일본의 농촌은 소득수준이 높다고 하는데도 연변의 주택들이 기차길 옆에 맞닿아 있는 것이 이상했다. 도중에 기모노 차림을 한 한 무리의 중년부인들이 올라타자 갑자기 열차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코네 어디에선가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오다와라(小田原)에서 등산철도로 갈아타지 않고 1시간 반만에 철도 종점인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까지 갔다.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탄 후 모토하코네(元箱根)의 선착장에서 神社도 구경하고 유람선을 탈 작정이었다. 주말의 아시노코(芦ノ湖) 호반에서는 많은 주민과 관광객들이 낚시와 뱃놀이를 하고 일부 관광객들은 해적선 모양의 유람선을 타고 선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이 보이는 신사를 찾아갔다. 하늘을 찌를 듯한 스기(杉)나무가 열을 지어있는 가운데 고즈녁한 신사 구내에는 입시철을 맞아 복을 빌러온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일본 사람들은 신사를 찾아와서 종이쪽지 또는 나무판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놓고 복을 빈다고 하였다. 종이, 나무판은 돈을 주고 사야 하니 그것이 복채인 셈이다. 구내 도장에서는 일본식 활쏘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선착장에는 마침 해적선 모양의 관광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중에는 한 무리의 중국 관광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의 융성하는 국력을 새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를 태운 해적선은 화산활동의 결과 생긴 칼데라 호수 물살을 가르며 건너편 토겐다이(挑源臺)를 향해 갔다. 여기쯤에서 후지산(富士山)이 보일 거라고 하였지만 어느 방향이나 하늘에는 잿빛 구름뿐이었다. 호숫가에는 호텔과 골프장, 그리고 우거진 숲 사이로 과수원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 지역은 봄 벚꽃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3월초라서 벚꽃 핀 풍경은 머리 속에 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키라 쿠로사와 감독의 1990년작 영화 "꿈"에 나오는 벚꽃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장면도 생각이 났다.

 

배를 타고 40여분만에 도착한 토겐다이 선착장에서는 곧바로 소운잔(早雲山)으로 오르는 로프웨이(케이블카)로 연결되었다. 산으로 점점 올라갈수록 아시노코 호수가 작아 보였다. 제법 높은 산중턱의 오와쿠다니(大涌谷) 계곡에는 유황 냄새 나는 하얀 수증기가 솟아올라 이곳에서 여전히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로프웨이에서 내려 유황천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후 이곳 명물인 검은 계란(黑卵)을 사 먹었다.

 

소운잔에서는 다시 등산 케이블카(경사면을 케이블로 오르내리는 인클라인 철도)로 갈아 타고 고라(强羅)로 향했다. 여기서는 일로 내리막길이었다. 지명들이 公園上-下인 것처럼 이 지역에는 프랑스풍의 고라 공원, 하코네 미술관 등 이름난 공원과 정원이 많았다. 마침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어 시장기를 느꼈으므로 우리 일행은 역 부근의 고라 호텔로 갔다. 점심시간에 제공되는 오찬을 겸한 경제적인 온천욕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주변의 산들이 한 눈에 조망되는 구내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곁들인 도시락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호텔 구내 온천으로 갔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우리나라의 호텔 사우나와는 달리 옷장도, 한증탕도 없이 그저 밋밋한 대욕조 안에서 몸을 담그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목욕을 끝낸 후 찾아간 휴게실(군데군데 상이 놓여 있는 운동장같이 넓은 다다미방)에는 뜨거운 오차가 보온병 안에 담겨 있어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우연찮게도 이 방의 이름은 저녁놀에 불타는 '붉은 후지산'이었다.

 

20-30분 가량 눈을 붙인 후 우리는 고라역에서 하코네유모토행 등산전차를 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역인 초고쿠노모리(彫刻の森)역에서 내렸다. 바로 역 앞에 피카소와 헨리 무어의 작품 전시로 유명한 '조각의 숲 미술관'(Hakone Open-Air Museum)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케이(産經) 신문의 사주가 필생의 콜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1969년에 오픈한 이 야외 미술관에는 우리나라 용인의 호암 미술관에도 있는 부르델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조각과 헨리 무어의 걸작 조각이 주변의 자연경관에 어울리게 전시되어 있었다. 피카소관에는 세계 최초의 사설 피카소 미술관답게 피카소의 정열이 넘치는 회화, 온갖 모양의 도자기, 데빗 던칸이 촬영한 피카소의 만년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오후 5시 마감시간에 쫒겨 미술관에서 걸어 나왔다. 이미 날은 상당히 어두워졌고 하늘은 지금이라도 비가 뿌릴 기세였다. 등산전차는 급경사 철도를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관계로 중간의 신호소에서 앞 뒤로 진행방향이 바뀌었다. 간혹 상행열차와 교행하기도 했는데 가파른 경사면에 철도를 건설한 것이 참 신기했다.

등산전차를 탄 지 50여분만에 우리는 하코네유모토역에 도착했다. 어둠이 깔린 이곳에서 더 지체하기도 뭣하고 하여 예정 출발시간을 한 시간 앞당긴 6시 10분발 기차표로 교환한 후 잠시후 신주쿠행 로맨스카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동료직원의 친절한 배려로 온갖 탈것을 다 타보고 온천목욕까지 한 다음 미술작품을 보며 眼福을 만끽할 수 있었던 다채로운 관광코스였다.